금성에서 온 소년

커푸

 투명한 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맑은 푸른빛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가운데에 뜨거운 태양이 눈을 찌르듯 밝은 빛을 쏘아댔다. 유리창에 반사되어 산란하는 빛이 언뜻 무지개를 그린 것도 같다. 찰나의 몹시 아름다운 광경 끝에는 몸이 부유하고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끝없는 낙하감만이 남는다.

 심장이 땅에 곤두박질 치는 듯한 공포감에 현우는 몸을 크게 경련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맥박이 아플 정도로 요동쳤다. 자신이 있는 곳은 떨어질 공간이라곤 없는 낮은 매트리스 위일 뿐이라는 것을 몇 번이나 되뇌고 심호흡을 한 뒤에야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수선스럽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나갑니다, 잠시만요.”



 택배나 배달은 올 게 없고, 이웃이나 경비라면 이렇게 요란하게 벨을 여러 번 울리지 않을 텐데 당최 누가 평일 대낮에 벨을 울려 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현우는 무더운 여름에 밖에서 기다렸을 누군가에게 미안해 허겁지겁 반팔을 꿰어 입었다.

 문을 벌컥 열자 예상보다 눈높이가 한참 내려간 곳에 한 소년이 서 있다. 많아봐야 열 다섯은 될까 한 소년은 현우와 처음 보는 사이인 게 분명함에도 마치 잘 알던 사이처럼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집에 있었으면서.”
“으응, 미안해.”



 현우는 그 기세에 밀려 얼결에 사과부터 하고 말았다. 소년은 현우를 흘기듯 한 번 올려다보곤 당당하게 몸을 문 안으로 반쯤 디밀었다.



“더워 죽겠는데 엄청 오래 기다렸어요. 잠깐 들어가도 되죠?”
“어, 그래…….”



 소년의 말대로 여긴 복도식 아파트라 문 밖은 뻥 뚫린 야외나 마찬가지였다. 이쪽으로 해가 드는 시간이니 많이 더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집에 들일 의무는 없지만 역시나 얼떨결에 현우는 밀고 들어오는 소년을 거절하지 못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집안이 그리 시원하진 않아 에어컨을 켜고 냉장고에서 주스까지 꺼내 주자 소년은 자연스럽게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아, 저는 옆집에 이사 온 채형원이에요. 이건 이사 선물.”
“어어. 고맙다.”



 아까부터 조금 바보같이 대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잠이 덜 깨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현우는 소년, 형원의 손에 들려 있던 수박을 받아들었다. 정육면체로 정갈하게 잘린 수박이 네모난 반찬통에 정돈되어 있었다. 보통 떡이나 부침개가 아닌가 하고 현우가 수박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형원이 그 생각을 꿰뚫어 본 듯이 대꾸해왔다.



“여름이잖아요.”



 밖에서 오래 기다렸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반찬통이 미적지근했다. 현우는 통은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대답하며 냉장고에 수박을 넣었다. 그 사이 내준 오렌지 주스 한 컵을 단숨에 전부 들이킨 형원이 나갈 생각 없이 편하게 앉아 무신경하게 물었다.



“근데 아저씨는 왜 이 시간에 일 안 가고 집에 있어요? 백수예요?”
“……으음, 뭐. 그런 셈이지.”
“아저씨 몇 살인데요? 전 열 여섯이에요.”



 붙임성이 참 좋은 친구지만 현우는 악의 없이 묻는 질문에 침몰당할 위기였다. 거기다 대고 ‘네 두 배야.’라고 말하기가 민망해 망설임이 길어진다.



“……서른 둘이야.”
“와, 제 두 배네요.”



 하지만 형원은 곧바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촌철살인했다. 식은땀이 비질 흐르는 기분이었다. 형원은 자신이 뱉긴 했어도 그저 궁금했을 뿐 아무런 유감도 없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다만 현우가 썩 멋쩍어 보이자 작게 미소를 지으며 덧붙이는 것이다.



“아저씨한테도 무슨 사정이 있겠죠. 누구나 비밀은 있잖아요. 제 비밀도 알려드릴까요?”



 처음 본 사람에게 알려줄 정도라면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현우는 이 알 수 없는 내면세계를 가진 소년에게 조금씩 끌려들고 있는 듯했다. 어쩐지 보통 비밀이 아닐 것만 같다는 예감에 고개를 선선히 끄덕이게 된다.

 소년의 낯에 은밀한 미소가 떠오른다.



“전 사실 금성에서 왔어요.”







-







 오늘 현우의 저녁 식탁에 올라온 건 조금 바싹 익힌 팬케이크와 소시지였다. 모양이 제각각인 팬케이크를 파전 먹듯 젓가락으로 찢어 먹던 현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녁거리를 가져다 준 '금성에서 온 소년'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형원은 사실 저가 금성에서 온 이른바 외계인이라고 말했다. 현우도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런 엉뚱한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차라리 마법사라든가 흑염룡 따위였다면 그러려니 했으리라.

 그러면서도 설명하는 걸 듣고 있자면 금성에 대해 자세히도 알고 있더라. 지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대기가 어떻고 자전과 공전이 어떻고. 천문학엔 조예가 없는지라 현우는 가만히 들으며 종종 고개만 끄덕였었다. 그뿐이었는데도 형원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정확히는 수박이 담겼던 반찬통에 야들야들한 갈비찜을 가득 쌓아 돌려준 날부터, 형원은 자주 옆집 문을 두드렸다. 어떨 때는 서툴게 만든 간편식, 다른 때는 가게에서 사온 티가 나는 반찬을 예쁜 접시에 담아가지고선 현우에게 맹랑하게 요구했다.



“아저씨 오늘 뭐 했어요?”
“삼겹살 김치볶음.”
“이거랑 바꿔요.”



 현우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도 바꾸자고 뭐라도 해온 성의가 기특했을 뿐더러 요새 형원이 빈번하게 찾아온 덕에 비좁은 아파트에서 하루를 버티는 게 썩 심심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를 꼽자면…… 옆집 어른의 부재 때문이었다. 보통 아이가 이웃과 음식을 주고받거나 교류를 한다면 한 번 쯤은 부모가 들여다봤을 법도 한데, 현우는 아직 형원의 부모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아파트에 살고 있기도 하고 돈이 부족해 보이진 않았으니 안 계신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마 바빠서 얼굴을 잘 못 비추는 것이겠지. 현우는 매번 저녁을 혼자 먹는데다 배달음식이 아니면 대충 사온 레토르트 식품으로 떼우는 형원이 안타까웠다. 상황을 짐작한 이후에는 저녁마다 맛있는 메뉴를 해놓고 기다리기도 했다.

 바꾸어 주면 좋아서 씰룩이는 입꼬리와 매번 비어서 돌아오는 접시가 기꺼웠다. 그러니 어떤 하루에도 저녁시간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반갑게 문을 열어줬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년은 접시가 아니라 베개를 들고 서 있는 것이다.



“재워주세요.”



 딱 한 마디를 하고 걸음을 뻗는 형원을, 뒤늦게 정신 차린 현우가 다급히 막았다. 첫 만남부터 집안을 허용해줬다지만 잠시 들어오는 것과 숙식을 해결하는 건 달랐다.



“잠깐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재워달라니.”
“……집에서 자기 싫어요.”
“부모님은?”
“…….”
“형원아.”
“그냥 한 번만요. 잠만 잘게요. 아침 일찍 나갈 거예요.”
“그게…….”



 현우는 한숨을 삼켰다. 그 나이대 애들이 애 취급 받는 걸 질색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 현우는 이 난처함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부모님에 대해선 연락처고 뭐고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다고 어린애를 생판 남인 모르는 아저씨 집에서 재운다는 건 성인으로서의 양심이 몹시 찔리는 일이었다.

 쫓아내려면 쫓아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려다본 형원의 드물게 축 처진 눈꺼풀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현우는 입을 몇 번 벙긋대다가 다물기를 반복하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늘 하루만이야. 다음은 절대 없어.”
“네에.”



 대답마저도 답지않게 힘이 없었다. 저 나이의 청소년이 겪을 안 좋은 일이라면 부모나 친구와 관련된 일일 텐데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는지. 그건 아마도 소년의 ‘금성에서 왔다’는 비밀보다도 물어보기 힘든 질문일 것이다.



“밥은.”



 형원은 무기력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에게 주려고 많이 해놨던 돼지고기 김치찜에 불을 올렸다. 그날 밤 형원을 침실에 밀어넣은 현우가 거실 소파에 구겨져 누웠다. 다른 방에 있음에도 마음이 불편한 건 여전해 아예 나갈까 싶기도 했지만 집주인 없는 집에 애를 혼자 두고 나가는 것도 못할 짓이라 그만두었다.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돌아누워 억지로 눈을 꾹 감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번쩍 눈을 떴다.

 원래도 불면증이 있어 약을 먹어도 좀체 잠에 들지 못하는 편이지만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윽, 흐…… 끅,”



 얇은 벽 너머로 억누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최대한 참으려는 것 같았으나 어찌나 서러운지 중간중간에 숨을 쉬려고 입을 열었다가 새어나가는 그런 소리였다. 듣는 사람마저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가 생각보다 무거운 일이었을까.

 현우는 조용히 몸을 일으키고 앉아 있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들은 이상 무시하기는 어려운 탓이다. 자신 또한 그런 시간들을 견뎌왔고 또 여전히 견디고 있으므로.
아주 작은 소리가 나도록 방문을 두드렸음에도 울음소리가 뚝 끊긴다.



“…들어가도 돼?”
“…….”



 체감상 몇 분이 지났다고 느껴질 만큼 오래 침묵이 흘렀다. 남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라 억지로 들어가거나 그렇다고 답을 재촉하고 싶지도 않았다. 한참 뒤, 자는 척 하고 넘어가려는 걸까 싶을 때쯤에서야 대답이 돌아왔다.



“……네.”



 허락은 의외였다. 이웃 치고는 가까웠지만 친하다고 할 만큼은 아니었기에. 정말 비밀로 하고 싶은 일들은 알려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현우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문을 두드렸지만 막상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복잡한 머릿속을 뒤지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형원은 매트리스 위쪽 벽에 기대 앉아서 이불을 끌어모아 껴안은 채로 현우를 올려다봤다. 벌겋게 짓무른 눈가 주변에 눈물 자국이 선연하다. 현우는 조심스레 다가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예상 외로 형원이 먼저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금성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너무나 심각한 분위기에 꺼낸 말이라 현우는 그가 진정 금성에서 온 게 맞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형원이 뒤이어 말했다.



“제가 정말로 금성에서 왔다면 좋겠어요.”
“…….”
“그러면 저도 돌아갈 곳이 있을 테니까…….”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 옆에 있는 공간은 형원에게 있어 돌아갈 곳이 아니라는 것을. 그곳엔 안락한 집도 없고 그를 맞아주는 따뜻한 가족도 없었다. 바로 몇 걸음 옆에 있는 작은 아파트는 수억 킬로미터 떨어진 별보다도 먼 곳이었다.

 금성에서 왔다는 것은, 소년이 외톨이라는 말이었다.

 가슴이 지끈거리듯 아파왔다. 스스로가 그럴 자격도 처지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 형원이 안쓰러웠다. 그러나 주제에 값싼 동정이나 위로 따위를 아무렇게나 뱉을 수도 없었다. 어른다운 짓을 하겠다고 들어와서는 바보같이 앉아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본래 목적을 잃고 쓸데없는 자책과 상념에 빠져 있을 때, 거의 울음을 그친 형원이 말없이 현우의 등에 기대 왔다. 매번 당당하게 문을 넘어올 때와는 다르게 조심스레 다가온 뜨거운 뺨이 날개뼈 언저리에 닿는다. 어쩐지 그 맞닿은 체온에 현우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오히려 자신이 위안을 받은 것처럼.



“……이번 여름이 지나면 또 이사를 가야 한대요.”
“…….”
“가고 싶지 않아요.”



 다시금 형원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미약한 떨림이 전해졌다. 그 때서야 현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금성으로 돌아가게 되면…….”
“…….”
“무사히 도착했다고 편지해줘.”



 기다릴게. 새벽녘의 흐릿한 적막 사이로 미숙한 위로가 흩어진다. 어깻죽지에 기댄 고개가 천천히 아래위로 미끄러졌다. 현우는 동이 트고 나서야 제 등에 기대어 잠든 형원을 침대에 바로 눕혀 주었다.







-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의 단점은 벽이 얇아 층간이나 이웃 간에 생활소음이 잘 숨겨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우는 식탁 앞에 앉아 이마를 쓸었다. 보통의 소음이라면 현우가 신경 쓸 거리가 아니었다. 문제가 되는 건 옆집에서 들려오는 언성이 현우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형원과…… 그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목소리라는 것이다.

 한숨이 샌다.



‘멀쩡한 집 놔두고 왜 생판 남의 집을 들락거려서 동네 창피하게 해!’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냐고.’
‘너 엄마한테 말 그따위로 할래?’
‘밥은 먹고 사는지 연락 한 번 없었으면서 무슨 엄마야.’
‘저, 저…… 내가 어쩌다 저런 걸 낳아가지고.’



 내가 아는 누군가가 울며 소리치고 싸우는 소리를 듣는 건 힘든 일이다. 특히나 그게 꽤 일방적인 감정 소모이고, 자신이 끼어들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더. 심지어 그들의 대화 주제엔 현우가 중점적으로 끼어들어 있었다.

 형원은 현우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이후 전보다 더 자주 이 집에 출입했다. 부모님 없이 혼자 집에 있는 남자아이와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은둔생활을 하는 남자. 이웃들에게 안 좋게 보일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학을 자주 다녀 친구도 없다는 형원이 집에 혼자 있기 싫다며 찾아오는데 어떻게 매몰차게 내칠 수 있겠는가.

 변명이 어떻든 간에 어른으로서 대처가 부족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현관을 비집고 들어오는 외로운 소년을 막을 방법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 옆집에 사는 남자를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어쩌면 그저 자신이 미성숙한 어른일 뿐일지도 모르고.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현관문을 닫고 단지 아래로 내려갔다. 몇 달 전에 샀지만 몇 개비 줄지도 않은 담배갑을 한 손에 쥔 채다.

 썩 늦은 저녁 시간이지만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흡연구역 벤치에 걸터앉으면 자연히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문득 여름 밤에 잘 보인다던,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눈에 들어왔다.

 금성. 형원을 만나고 나서 관심도 없던 천체에 대해 찾아보았다. 태양과 달 다음으로 가장 밝은 별. 8년마다 황도를 가로지르는 금성, 즉 비너스의 자취는 완벽하게 별 모양을 그린다. 비너스와 그 별 모양은 완벽, 아름다움 그리고 성애의 순환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과거 사람들은 아름다운 지상낙원이라고도 상상했다던 별에서 온 소년이 형원이라면 퍽 어울리기도 했다.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으면 어쩐지 눈앞이 빙글빙글 돈다. 움직임이 없는 금성을 바라보는 건 그만 두고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라이터를 꺼내들려던 찰나에 자박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흡연구역 쪽으로 가까워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눈을 마주친 형원이 단박에 가까이 다가왔다.

 여전히 맹랑한 소년이 주저없이 좁힌 거리에 현우는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옆으로 옮겨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고 나서야 여기가 흡연구역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힐끗 본 형원의 눈가가 불그스름한 것이 보인다. 현우는 그냥 아무 지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아저씨 담배 피웠어요?”
“아, 이건 그냥… 가끔.”



 아직 불이 붙이 않은 채, 필터만 조금 축축해진 담배를 다시 갑 안에 넣었다. 형원은 주저하다가 다시 물었다.



“……다 들렸죠?”



 침묵이 대답을 대신했다. 아니라고 해봐야 거짓말인 걸 모를 리 없다. 며칠만 살아도 윗집과 옆집의 소음이 곧잘 들린다는 것쯤은 알 테니까.



“다 안 들었어. 중간에 나왔어.”
“미안해요.”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아마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을, 이웃들 사이에서도 출처가 불분명한 제 이야기를 들은 것에 대한 사과겠지. 현우는 마음 속으로만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건 절반 이상이 진실이니 별로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그런 시원찮은 대답만으로는 모호한 답답함을 채워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어차피 어느 정도는 알게 된 마당에 현우는 재미없는 예전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했다.

 아니 사실은 형원이 이런 기억을 마지막으로 떠나길 원하지 않았다. 어른스러운 척 했지만 집을 나온 순간부터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았음에도 속이 타들어갔다. 공연히 금성을 찾는 체 하며 형원이 밖으로 따라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군인이었다고 하지? 나.”
“……뭐야, 들었잖아요.”
“이웃 사는 사람들 다 아는 거야.”



 현우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애당초 들어올 때부터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고 들어왔고, 눈에 띄는 특이사항은 금세 소문이 퍼지기 마련이다. 다만 시작은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사고를 당해서 그렇게 됐다는 것에서, 군대 내 괴롭힘이라든지 불미스러운 사고까지 점점 와전되어 퍼졌을 뿐이다.

 그런 소문이 돌든지 말든지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연을 끊고 살았던 당시의 현우는 그 땐 몰라서 그랬고, 지금은 굳이 정정할 필요를 못 느꼈다. 불미스러운 사고를 당한 이후 집구석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한심하게 산다,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었다.



“공군이었어. 파일럿. 전투기 조종하는 사람, 알지?”
“……알죠.”
“훈련 중에 뭐가 잘못돼서…… 추락했거든. 탈출도 제대로 안 돼서 너무 늦게 빠져나왔어. 가까스로 살았지만 크게 다쳤고…….”



 많이 놀랐을 것이다. 원래도 크고 둥그런 눈이 더 크게 뜨이는 모습이 쉽게 상상됐다. 그러나 현우는 부러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말해주고 싶지 않았던 일이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표정을 갈무리할 자신이 없었다.



“하늘이 무서워졌어. 그런 파일럿이 어디 있겠어.”
“…….”
“그래서 다 그만뒀어. 그게 다야.”



 현우는 입술을 꾹 감쳐물었다. 하늘이 무서워졌다니. 이 말을 왜 했지? 많이 다쳐서, 재활하더라도 군인으로 살기에는 어려울 거라고 해서. 그래서 그만뒀다고 말했었다. 병실에서 곁을 지켜준 친구와 가족에게도 몇 년째 찾아가지 않은 상담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파랗고 높은 하늘이 무섭다는 건.

 마음대로 지껄인 입이 원망스러워 죽 입을 다물고 얼굴을 벅벅 쓸었다. 괜히 청승떨며 금성을 찾겠다고 하늘을 너무 오래 보고 있었나 싶다. 느닷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던 열 여섯짜리 중학생의 존재감이 예상보다 컸던 탓일까.

 길지 않은 정적 뒤에,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약간 돌아 앉은 현우의 어깨에 형원의 뒷통수가 가볍게 맞닿았다. 짧은 머리칼이 미적지근한 바람에 날려 어깨를 간지럽혔다.



“아저씨랑 같이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금성에?”



 현우는 부러 장난기를 섞어 되물었지만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드는 듯 동그란 머리가 어깨에 문질러지고 아주 늦지는 않은 머뭇거림 끝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옅게 번졌다.



“있을 거예요. 우리가 돌아갈 곳이…… 꼭.”







-







[2023년 7월 21일, 29번째 편지.

 오랜만이에요. 최근에 조금 바빴어요. 이번 학기엔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게 됐거든요. 장학금을 받으면서 생활비를 벌려면 앞으로 더 바빠질지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잘 된 일이에요. 전 이제 완전히 어머니 곁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아마 어머니도 그걸 원하셨겠죠.

 아무튼 저는 아직까진 꽤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요. 아르바이트도 적응되니까 나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장님께서 저를 아주 좋아하시거든요. 제가 일하기 시작하고서부터 손님이 늘어났대요. 오래 일했으면 좋겠다면서 시급도 올려주셨어요. 아무래도 사회생활에 소질이 있나 봐요.

 대학 생활은 정말 좋아요. 천문학도 흥미롭고요. 기회가 된다면 천체물리학도 배워 보려고 해요. 시간 여유가 되어줬으면 좋겠어요.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나아질지도 모르지만 최대한 대출은 만들고 싶지 않거든요.

 요새는 어때요? 직장에서 괴롭히는 사람은 없죠? 제가 묻기엔 좀 그렇지만 그냥 최근 뉴스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기사를 봐서요. 제 생각엔 아저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도 너무 친하게 지내느라 절 잊으면 안돼요. 아저씨의 첫 번째 친구는 저니까요. 저 말고 아저씨 집에 들어가 본 사람은 없겠죠? 저는 질투가 많아서 상상만 해도 서운해요.

 이런 것만 봐도 저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봐요. 스무 살이 된 지도 반 년이 넘게 지났지만 스스로가 변했다고 느껴지진 않아요. 전 여전히 저희 둘만 알고 있는 금성 이야기가 좋고 아저씨가 보고 싶어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편지지가 몇 장이라도 모자랄 정도예요. 그래도 전부 다 써버렸다간 나중에 아저씨를 만나서 할 말이 없어질지도 모르니까 아껴둘게요.

 아무리 생각해도 한 페이지는 짧은 것 같아요, 이만 줄일게요.

p.s. 다시 만나게 되면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복역은 할 수 없지만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한 현우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우편함을 살피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다. 특히나 요 몇 달 간 편지가 뜸했기에 더 그랬다. 오늘은 다행히 익숙한 편지봉투가 보여 잽싸게 집어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신발을 벗으면서 봉투를 열어보았다가, 현관에 서서 편지를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형원이 떠나고 몇 달 뒤부터 보내기 시작한 편지는 한 달에 한두 번씩, 각자의 이유로 바쁠 때엔 두어 달에 한 번씩 주고받게 됐다. 처음 몇 번 형원은 두서없이 늘어놓는 말들로만 두어 장에서 많으면 다섯 장이 넘는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물론 그것도 썩 재미있었지만, 전부 답장하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니 언젠가부턴 한 페이지를 넘기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래서인지 줄이 그어져 있지 않은 편지지에 글간격을 빽빽이 맞춘 글자가 가득하다. 추신까지 꾸깃꾸깃하게 욱여넣은 편지를 두세 번 반복해 읽었다. 성인이 되었다고 문체가 사뭇 어른스러워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봐야 동글동글한 글씨체는 얼굴도 동그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볼 때엔 미간이 조금 좁아졌으나, 추신 부분을 읽는 현우의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스며 있었다.

 시간이 꽤 늦었기 때문에 현우는 먼저 씻고 책상 앞에 앉아 첫 번째 서랍을 열었다. 비슷한 생김새의 무늬 없는 빈 편지지들이 그 안에 쌓여 있었다. 그 중 하나를 꺼내 펼치고 연필도 한 자루 꺼내들었다. 말솜씨가 유려하진 않은 현우는 서두를 떼려고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사실 그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현우는 서두를 적기 전에 가장 아래에 추신을 먼저 적었다.



[p.s. 꿈도 꾸지 마.]



 이걸 확인하고 표정을 구길 형원을 상상하자 웃음이 흘러나왔다. 현우는 다시 제일 위로 돌아왔다. 아, 날짜. 시계를 확인하니 월요일 자정이 지나 25일이 되어 있었다.



[2023년 7월 25일, 30번째 편지.]



 그 아래에 인사말을 뭐라고 쓸까 고민하다 이렇게 적었다.



[편지 기다렸어.]



 그리고 다시 지워버렸다. 여름내 함께 시간을 보내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정이 많이 들었지만, 나이가 훨씬 어린 형원에게 섣불리 그런 티를 내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도 나이 차이가 열 여섯이나 나니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것마저 부적절하게 본대도 할 말이 없었다.

 첫 문장을 지운 자리에 현우는 다시 이렇게 적었다.



[오랜만에 보니까 더 반갑네.]



 같은 말을 에둘러 표현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렇게라도 하는 게 마음은 편했다. 그렇게라도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 뒤를 적어내리는 건 어렵지 않다.



[기숙사에 들어가게 된 것 축하해. 장학금을 받은 것도. 열심히 해서 네가 그렇게 바라던 것들을 벌써 몇 가지 이뤄낸 건 좋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 네가 건강히 잘 지내지 않으면 다 소용 없는 일이잖아. 이제 막 스무 살이 됐는데 공부와 아르바이트로만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해. 학교 생활도 즐기고. 삶에 지치면 좋아하던 것들도 소원해지기 마련이니까.

 너무 나이 든 사람처럼 잔소리했나? 어쩔 수 없어. 전보다 더 아저씨가 돼버렸거든. 이제 서른보다 마흔이 더 가까워졌어……. 어쨌든 아르바이트를 즐겁게 하고 있는 건 다행이다. 그런데 네가 일하고 나서 손님이 늘어났다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주 잘 자랐나 보네. 하긴, 넌 4년 전에도 엄청 귀여웠지.

 직장은 아주 좋아. 큰 회사는 아니어서 사람이 많진 않지만 다들 좋은 사람들 같아. 점심은 같이 먹어도 회식은 잘 하지 않고 개인 시간을 존중해줘서 월급이 넉넉하지 않아도 정말 마음에 들어. 그리고 네가 날 걱정해주는 건 얼마든지 괜찮으니까 뭐든 물어봐도 돼.

 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건 내가 집에 데려올 만큼 친한 친구를 사귀진 못 했다는 점이야. 이게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널 서운하게 만들진 않았으니까 된 거겠지, 뭐.

 난 네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그러니까 불안해 하지마. 내 기억엔 네 나이 때의 나는 너보다 훨씬 철이 없었-]




 다만 생각보다 길어지는 편지에 점점 손에 힘이 빠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시간을 확인하며 쓰진 않았기에 새벽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현우의 고개가 책상과 닿을 듯 떨어졌다. 휘청이던 고개가 옆으로 미끄러지듯 엎드리며 까무룩 잠에 들고 말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광활한 하늘 위에서 눈을 떴다.

 투명한 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맑은 푸른빛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가운데에 뜨거운 태양이 눈을 찌르듯 밝은 빛을 쏘아댔다. 유리창에 반사되어 산란하는 빛이 언뜻 무지개를 그린 것도 같다. 찰나의 몹시 아름다운 광경 끝에 몸이 부유했고, 현우는 닥쳐올 공포에 대비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떠오른 몸은 추락하지 않았다. 슬그머니 눈을 뜨면 열 여섯의 모습을 한 형원이 앞에 있었다. 그 때를 마지막으로 사진도 한 번 본 적 없으니 현우의 무의식 속 형원은 자라지 않은 모양이었다.

 형원은 말없이 현우의 손을 붙잡고 하늘 위를 내달렸다. 이상한 기분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하늘을 허우적대는데도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다리를 움직이다 고개를 들자 노을 지는 황금빛 땅에 도착해 있었다. 마치 과거 사람들이 지상낙원이라고 상상했던 금성의 풍경처럼 아름다운 곳에.

 소년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얼핏 환하게 웃는 입가를 본 것 같았다.

 드물게도 공황 발작 없이 차분하게 잠에서 깨어난 현우가 눈꺼풀을 느리게 깜빡였다. 책상에 엎드려 자느라 목은 조금 뻐근했지만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잠들었던 듯했다. 어떤 꿈을 꾸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아늑하고 평화로웠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잠시 후 멍한 정신을 깨우는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이른 아침부터 방문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우는 반사적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누구…….”



 현우의 시선이 약간 위로 올라갈 정도로 키가 큰 남자. 호리호리하지만 뼈대가 있고, 선이 고우면서도 짙은 눈썹 덕에 남성미가 있는 사내였다. 살짝 웃자 젖살인지 볼살이 있는 뺨이 애교 있게 봉긋해졌다.



“……형원이?”
“보고 싶었어요, 형.”



 묻지도 않고 성큼 현관을 넘어 들어온 형원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현우를 와락 껴안는다. 아직 남은 잠기운에 눈을 크게 뜬 채로 현우는 얼떨떨하게 그의 등을 더듬거렸다. 후끈한 여름 공기가 뒤늦게 끼쳐 온다. 달궈진 체온이 손바닥에 끈적하게 감겨들었다. 한참 동안 자신에게 안겨든 더운 체온을 실감하던 두 눈이 서서히 안도감에 젖어든다.

 실은 나도 네가 돌아오길 기다렸어.

 나를 지켜주는 금성. 나의 샛별, 나의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다빈치 코드>, 베텔스만 코리아, 2003, 6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