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계절

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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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계절



1.
 그 아이는 눈에 띄게 마르고 여름에 부는 선선한 미풍보다 가늘었다. 그러면서도 아주 어여뻐서 나의 기억 속엔 시대를 풍미한 그 어떤 여배우 보다도 아름다운 초상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체육 시간에 50m 달리기를 하더라도 밭은 숨을 몰아 내쉴 정도로 몸이 약했는데 그럼에도 또래보다 키가 컸다. 깊은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 가며 내쉬는 동안 그 아이의 흉부가 멀리서도 눈에 띄게 오르락 내리락 거렸는데, 마치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위태로움이었다. 몇 번이나 반복된 학급 내 예선전을 거쳐, 기어이 운동회에서 50m 달리기에 출전한 그 아이는 출발선에 쭈그려 앉아 한 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치켜 뜬 두 눈동자엔 서슬퍼런 욕심이 서려있었다. 한 번의 충격으로도 부숴질 것 같은 얄쌍한 몸뚱아리와 이루어내는 희안한 조화였다.

탕!

 그 시절이라 가능했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육상 경기 용 총성이 초등학교 운동장 위로 울려퍼졌다. 요즘 같으면 위험하다고 민원이 수 백 통 쯤 들어왔을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아이는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한 쪽 가슴을 꼬옥 쥐고 있던 손이 순식간에 주먹을 쥐었고, 어금니를 악 문 탓인지 볼록하게 오른 볼살이 그 아이를 더 아이답게 만들었다. 흙바닥에 먼지가 일 정도로 서툴고도 투박한 뜀박질이었다.
 고작 50m. 나라면 대충 달려도 10초면 닿았을 하얀 결승선이 그 애들에겐 까맣게 먼 바다 같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때 그 수 초의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진 것은 내가 그 장면을 한 편의 장면으로 찍어 머릿 속에 저장하고 있었기 때문일 지도.


 그러니까 그 날은 토요일이었다.
 격주마다 토요일에 나가 수업을 듣던 까마득한 시절, 이제 막 교복을 입기 시작한 우리는 평소엔 보지도 않는 신문을 주워다 읽어가며 학급 주 5일제를 간절히 응원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정년 은퇴를 앞두고 계시던 담임 선생님 - 그리고 학년 주임이셨다 - 께서는 둘 째 주 토요일에 나타난 우리들에게 교내 쓰레기나 줍다가 교과 시간에 돌오라며 미화활동을 가장한 자유시간을 종종 주곤 하셨다. 조례 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나와 철영이는 부직포 가방과 쇠로 만든 집게를 들고 운동장으로 튀어나가곤 했다.
 일부러 학교 건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알짱대고 있으면, 엉망으로 꼬아둔 철장을 경계로 나눠진 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다니던 학교와 이름을 나눠쓰는 곳이었다. 그리고 아직은 영글지 못한 어린이들이 제법 사춘기 흉내를 내며 열심히 국민체조를 하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그리고 그 때 처음 그 아이를 발견했다.
 그 애는 아주 많이 뜨거운 햇빛 아래 창백해진 얼굴을 숨기지도 못한 채 간헐적으로 비틀거리며 서툰 몸짓을 이어갔다. 모순적이게도 그 애의 창백한 얼굴은 따사로운 볕 아래 하나의 그림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아파보이는데, 가서 물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나를 강하게 치고 갔지만, 눈 앞엔 내 키보다 높은 철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하늘을 찌르는 호기심도, 그리고 그 호기심을 해결하지 못해 배꼽 아래 아려오는 감각도 모두. 나에겐 강렬한 처음이자 첫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2주에 한 번, 비슷한 시간대 마다 그 아이를 구경했다. 다 헐어버린 녹색의 부직포 가방 안으로 대충 껌종이나 쓰레기를 주워 넣곤 나무 아래 그늘을 친구 삼았다.
 철영이는 언젠가는 내 옆에서 같이 담 넘어를 보기도 했고, 어떨 땐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 문방구에서 게임을 하다 오기도 했다. 자연스럽게도 나는 철영이가 없는 날들이 오히려 기다려졌다. 누군가를 몰래 바라보는 나의 모습 따위를 부랄친구에게도 들키기 싫은 어린 마음이었다.
 어느 날 부터 그 애는 둥그런 캡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겨우 허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모자 챙 아래로 얼핏 보이는 그 애의 안색이 훨씬 좋아보였던 것을 보면 효과는 꽤나 좋은 듯 했다. 날씨가 유독 시원한 날이면 그 애는 긴 팔의 가디건을 걸쳤다. 보드라워 보이면서도 두툼한 그 애의 겉옷은 한 눈에 봐도 누군가가 손수 만든 옷임이 분명해보였다. 그 애는 단추를 더욱 여미면서도 운동장 속 무리를 이탈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여름이 시작되던, 아주아주 뜨거운 해가 뜨던 날 그 애는 처음으로 반팔을 입고 나타났다. 하얀 얼굴에 이어 하얀 팔과 다리가 쭉 뻗은 채 철장을 휘감은 덩쿨보다 더 가느다랗게 서있었다.

 그 애가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사이, 내가 보아온 그 애의 모든 모습들도 함께 달렸다. 그래, 어쩌면 죽기 직전 사람들 눈에 스쳐지나간다는 주마등 같았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겪어본 적 없던 어떠한 경험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느리게 재생시킨 비디오 테이프 마냥, 늘어진 필름이 진득하게 날카로워지는 만큼 그 애의 얼굴도 사나워져갔다. 꾹 참은 숨 만큼 한계가 선명하게 드리워졌다. 주변의 모든 소음이 완벽하게 죽어버렸다.

정적.
소란스러운 정적.

 그리고 그 애가 결승선을 통과하며 하얀 띠를 가슴팍으로 찢어내는 순간, 다시 모든 소음이 귓가를 때렸다. 와! 한 구석에선 감탄과 비명이 동시에 터지기도 했다. 고작해야 동네 초등학교에 삼삼오오 모인 어린 아이들과 그의 가족들이 동시에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그 애가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1등을 차지한 순간이었다.
 나 역시 그 광경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다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곱게 구겨진 그 애의 얼굴이 유독 어여뻐보인 탓이었다. 달음박질 없이도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찰나가 채 지나기도 전에 그 애는 봄의 초입에 떨어지는 목련꽃 마냥 풀썩 쓰러졌다.

구급차!
구급차 불러주세요!
어머니, 형원이 어머니!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정말로 몸이 약했던 그 애는 고작 50m 달리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는 미련없이 숨을 삼켰다. 그러나 삼킨 숨을 뱉어내지 못해 소란스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창백한 얼굴을 가리지도 못하고 누워있었다. 그 순간에 나는 두 번 째 첫 경험을 했다. 배꼽 깊숙한 어딘가가 찌르르 울리던 이전과는 다르게 이번엔 왼쪽 가슴 한 가운데가 파르라니 형체를 드러내며 미련하게 조여들었다. 아, 이별의 감각. 나는 직감했던 것 같다. 먼 길을 떠나는 그 애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첫 이별을 경험해야했다.
 온 몸이 물 먹은 이불 마냥 완전히 널부러지기 전,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올린 그 애와 눈이 마주쳤었다. 그 애가 열심히 달려간 50m 보다도 훨씬 먼 곳에 서있던 나는, 그래, 그 애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눈을 맞추었었다. 여름이 시작되던 날의 일이었다.



2.
 그 애의 이름은 채형원. 처음 그 애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땐, 이름까지도 곱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큰 소란이 지나간 후의 학교는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얼이 빠진 상태로 주말을 겨우 보내고서 다시 월요일, 학교에 갔을 땐 철영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현우, 네가 응원하던 그 아이 끝내 동네에서 사라졌다고. 나는 예상했던 소식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응했다. 철영이는 내가 아픈 아이를 뒤에서 몰래 응원하는 마음 여린 녀석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다. 나는 굳이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 것이 겨우 청소년이라 불릴 수 있는 나이가 된 어린 사내 자식이 드러낼 수 있는 최대한의 슬픔이었다.



3.
 동시에 그 애의 이름은 첫사랑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이자 완성하지 못한 내 소년 시절의 잔해였다. 덕분에 나는 평생을 소리내어 웃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완전히 무너져내려 우는 법을 터득하지도 못했다. 빨대 중간이 낀 이물질처럼 나의 신경을 건드리고 혼자 튀어나와있는 문지방처럼 내 몸의 구석구석을 멍들게 만들기도 했다. 종교가 없던 나는 다시 한 번 그 애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하는 애송이였다. 무엇보다도 사내 아이가 첫사랑인 바람에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고민 상담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어쩌면, 한 번 쯤은.
 멀리 가버린 그 애가 사실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면, 살아가다 한 번 쯤은 볼 수 있지 않을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나는 매일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을 찾아 헤맸던 것 같다. 수능을 며칠 앞 둔 날까지도 나는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지하철 역 근처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다. 혹시라도 알바를 못하게 될까봐 일전에 3일 밤낮을 졸라 부모님께 받아낸 동의서를 수십장 복사해두기도 했다. 번복하시면 안 돼요. 이미 싸인 하셨잖아요. 아버지께선 본인의 자식이지만 고집을 도통 당해낼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곤 더는 말씀이 없으셨다.

 수영을 그만 둔 것은 고등학교 3학년에 들어서면서였다. 학업에 큰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고, 심한 부상 때문에 강제로 은퇴당한 것도 아니었다. 진작에 180cm를 넘은 키가 더이상 자랄 틈이 없다는 진단과 함께 이 전부터 피부로 느껴지던 실력과 기량의 한계가 때마침 슬럼프를 겪기 시작한 시기와 우연히 맞물렸을 뿐이다. 꼭 5년 만의 은퇴였다. 후회도 미련도 없는 깔끔한 작별. 코치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린 후 떠나는 훈련장을 끝으로 나는 곧장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어느 덧, 이 곳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는 소리였다. 지정된 쉬프트를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와서 시간을 꽉꽉 채워 일하는 나를 사장이 마음에 들어했다. 종종 주말에 펑크가 나면 대타를 나가기도 하고 재고 상하차를 돕기도 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을 거다. 덕분에 아르바이트를 하다 맞이한 생일엔 보너스라며 용돈을 받기도 했다.

'얘, 너는 보너스를 받아도 안 기쁘니?'

 젊은 여사장이 내 어깨를 담배곽으로 쿡 찌르며 물어봐도 나는 어깨만 으쓱해보일 뿐이었다. 수능을 이틀 앞 둔 나에게 열심히 하라며 엿 한 박스와 함께 또 보너스를 챙겨준 그녀였다.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역세권에 편의점을 낸 금수저. 공부에도 가업을 물려받는 일에도 뜻이 없어서, 그저 부모님 명의의 건물에 세들어 카페를 굴리다가 사장이 맛 없고 커피가 싸가지 없다고 소문이 나 대차게 말아먹은 구제불능. 그럼에도 돈이 차고 넘쳤던 철부지 사장은 절대 망할 일이 없는 곳에 편의점을 차렸다.

'너 대학도 요 앞에 가라.'

 나는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매대 정리나 했다.

'너 같은 알바 다시 못 구할 것 같아.'

 잘생기고, 몸도 좋고, 묵묵하고, 시키는 거 다 하고. 음, 그리고 또 몸이 좋잖아?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자서 끝도 없이 뱉어내는 사장은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도 흥얼거렸다. 미성년자 보고 몸 좋다고 그러다간 신고 당해요. 지나가는 말로 대꾸해줬더니 콧방귀를 흥, 하고 뀌었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손현우 너는 인마 네 몸 좋은 거에 자부심 느끼잖아. 나는 눈썹만 들썩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좀 전에 한바탕 중학생 애들이 편의점을 휩쓸고 간 뒤였다. 학교가 끝나자 마자 버스며 지하철을 타고 시내까지 학원을 다니기 위해 달려온 애들은 꼭 이 곳에 들려 간단한 요깃거리를 쓸어갔다. 삼각김밥, 도시락, 컵라면, 삶은 계란, 각종 간식들. 한시간 쯤 뒤 쉬는 시간에 다시 들이닥칠 아이들을 위해 재고를 채워둘 생각으로 바쁘게 움직이던 때였다.

'얘, 알바야.'
'저 바쁜데요.'
'혹시 니 첫사랑 예쁘니?'

 뜬금없는 사장의 물음에 기가 털려 그녀를 돌아봤다. 한량같은 사장이지만 이렇게 학생들이 들이닥쳐 바쁠 시간엔 눈치껏 나와서 계산대를 지키고 앉아있는 것이 썩 센스가 있나 했더니, 알바들에게 그렇게 말을 걸어댔다.

'사장님, 손님 기다리시는데요.'

 나는 그녀의 앞에 오도카니 서있는 손님을 턱 끝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평소라면 그냥 무시했을텐데. 처음 알바를 시작하며 무뚝뚝하게 구는 나를 파악해버린 사장이 내건 조건이었다. 본인과 나, 그러니까 나와 사장을 제외한 타인이 있는 앞에선 최대한 공손하게 대꾸할 것. 이미 카페를 말아먹으며 주변 평판에 대한 큰 깨우침을 얻은 사장의 근로계약서 끄트머리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써논 항목이었다. 법적 효력이 전혀 없는 조건사항이지만.
 내 대답에 나를 가만히 쳐다보던 사장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러더니 계산대에 손님을 내버려두곤 나를 향해 느긋하게 걸어오며 아프지도 않은지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요즘 지원이 타임 끝나면 가끔 재고가 비더라. 내가 확인할게, 가서 계산대 봐줘.'

그리곤 나를 지나쳐가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니 첫사랑 닮았더라.'

내가 남중, 남고 다닌 걸 알고 있는 사장의 그저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사실 사장이 카페를 말아먹은 이유가 따로있다던 지원님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사장은 금수저에 구제불능도 맞지만, 사실은 핏줄 대대로 신기를 타고난 무당팔자라더라. 외가 핏줄 타고 내려온 신병을 앓다가 무당길 걷기는 싫어서 누름굿을 받았는데, 신병을 눌러놨으나 시시때때로 튀어나오는 점사는 막을 수가 없어서 카페 오는 손님들 면전에 오만 점사를 다 던져놓았다던데. 그게 하필 악재와 관련된 점사도 있어서 그 동네 소문 쫙 나고 카페는 문 닫고. 야반도주해서 숨어 살다가 제 주둥이 간수 가능해질만 하니까 다시 차린게 여기 편의점이랜다.
 그러니까 요점은 사장이 무심코 툭툭 던지는 얘기를 흘려듣지 말라는 거였다. 분명히 그랬는데...

'...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손님을 마주 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언제였더라, 열 네 살이었나? 그 때 그 철장 너머로 그 애를 보던 순간이 겹쳐보였다. 주변의 모든 것이 슬로우모션처럼 느려지며 귀가 먹먹해지고 손 끝으로 순식간에 피가 쏠려 머리가 핑핑 돌았다. 당황한 눈이 갈피를 못 잡는 사이, 유리벽 바깥으로 올 해의 첫 눈이 흩날리는 것을 보았다.

'... ...'

 코 끝까지 목도리를 둘러 얼굴의 반이 가려져 있었지만, 그 애의 두 눈은 그대로였다. 내가 자란 만큼, 아니 그것보단 아주 조금 덜 자란 그 애의 시선이 얼추 비슷한 곳에서 마주쳤다.
이름을 불러도 될까.
 나만 몰래 알고 있던, 그 세글자를 불러볼 용기를 가져봐도 되는 걸까.

'채형원.'

 나도 모르게 무심코 불러버린 이름에, 그 애가 가뜩이나 커다란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얼굴의 절반이 동그랗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덮힌 것 같은 착시까지 불러왔다. 따뜻한 실내 공기에도 목도리를 푸르지 않는 그 애는 놀란 눈으로 따신 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그러는 동안 그 애의 눈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의심을 담아 가늘어졌다가 다시 원래의 크기를 되찾아갔다. 무엇을 가늠하고 있는 걸까. 훈련을 막 끝낸 것처럼 폐가 잔뜩 부풀어오르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최대치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결심한 듯, 그 애가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는 사이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한 손으로 목도리를 얼굴 아래까지 끌어내린 그 애는 웃는 듯 마는 듯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도톰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기억 하시네요.'



4.
 어떻게 잊겠어.

'...나를, 알아?'

 그 애가 건넨 여섯 음절에 모든 답이 들어있었지만, 나는 굳이 확인 받고 싶어졌다. 다시 한 번, 그 애의 입으로 나를 알고 있노라고, 그리고 기억하고 있었다고.

'글쎄... 안다고 해야할 지, 모른다고 해야할 지.'

 목련처럼 스러지던 그 애는 첫 눈처럼 웃었다. 내 앞에 서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아서, 심장이 한계치에 가깝게 뜨거워지면 한 겨울에도 신기루가 생기는 걸까? 하는 무식한 상상을 해버렸다.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 건지도 모르게끔 한 순간에 내 앞에 뚝 떨어진 행운이었다.

'계산 안 해주실 거에요?'

 아, 맞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따뜻한 유자차 한 병과 프링글스 작은 통의 바코드를 느릿하게 찍었다. 일부러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 눈 앞의 그 애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던 탓에 나는 포스를 손에 쥔 채로 그 애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티 나게 행동하는 나를 두고서도 재촉 한 번 없이, 짜증나는 기색 하나 없이 그 애는 나를 끈질기게 기다려주었다.

'2,200원 입니다.'

 그 애가 건넨 카드를 받아 포스기에 긁으면서도 나는 그 애 얼굴을 쳐다보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애도 나를 마주 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용기 있는 것은 그 애였다.

'저 초등학생 때, 형이 중학생이었으니까...'
'응. 그래도 돼.'

 나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누가 들어도 여유가 없는 나의 말소리가 조금 부끄러웠지만 체면차릴 시간은 없었다. 우연히 만난 그 애가 다시 뒤돌아 나가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붙들고 늘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본능처럼 알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또 다시 몇 년, 아니 어쩌면 이번엔 평생을 놓쳐버릴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따라 슬금슬금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형원아. 아, 미안. 형원이라고 부를게.'
'네.'
'내 전화번호 줘도 될까?'

 내가 내일 모레 수능인데, 그 때 까지는 휴대폰 꺼둘거라, 그치만 수능 끝나면 바로 연락할 수 있어. 저기, 그러니까 내가 번호를 적어줄게. 그래도 될까?
 살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뱉어낸 문장 조각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다급해 보이는 나를 쳐다보던 그 애는 얌전하고 착하게 네, 라고 대답을 해주면서도 때때론 웃음을 지었던 것 같다. 계산을 마친 과자는 커다란 주머니에 넣고, 아직 따뜻한 유자차 병을 두 손에 꼭 쥔채로 그 앤 허둥대는 나를 똑바로 쳐다봐주었다. 내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되물어보지도 않고.
 그런데 하필 이럴 때 볼펜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 메모지로 쓸만한 버려진 영수증도 하나 없는 것이, 그리고 나 조차 내 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바로 머피의 법칙이려나.

'얘, 알바야. 포스기 아래에 나 뭐 떨어뜨린 것 같은데 좀 봐주지 않으련?'

 그렇다면 점쟁이 사장은 하늘이 내려준 귀인일 것이다.
 창고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청아하게 울려퍼졌다. 나는 한 시가 급하고 마음이 쫓겨 미칠 것 같은데, 뭘 또 부탁하는 거야. 속으로 욕을 짓이기며 포스기 아래를 손으로 훑자 사각, 소리를 내며 쪽지 한 장이 손 끝에 잡혔다. 이걸 사장에게 가져다주고 온다면, 눈 앞의 그 애는 사라져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에 카운터 아래로 가려진 다리가 달달 떨렸다.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려줄까.

'그, 형원아... 잠시만...'
'형, 그거 저 주세요.'

 그러더니 내 손에 쥐어진 쪽지를 쏙 뽑아가는 것이었다. 동그랗게 웃어보인 형원이는 쪽지를 주머니 속으로 쏙 집어넣더니 나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나중에 사장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그 쪽지엔 내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혀있었다고 했다. 편의점이 아니라 신내림을 받고 점집을 차렸으면 떼돈을 벌었을 거야, 나는. 훗날 사장은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제가 병원에 가야해서. 이만 가볼게요, 형.'

 내가 얼빠져있는 사이 형원이는 11월의 첫 눈 처럼 다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5.
 좋아하니까, 그리고 좋았으니까. 내가 수영을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헤엄치고 나면 느껴지는 통각이 좋았다. 폐가 크게 부풀어오르고 심장이 멎기 전까지 펄떡펄떡 뛰면서 숨은 꼴딱 넘어갈 것 같은 감각. 배꼽 안 쪽이 찌르르 울리며 장기가 다 뒤틀리고 심장이 한계치까지 조여오는 고통. 그것은 그 여름 형원이가 바스라지던 날을 보던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1,500m 경기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막판 스퍼트를 내며 기절하기 전까지 숨을 참고 근육을 혹사 시킨 뒤 물 밖으로 나오면 저절로 터지는 숨이, 꼭 나를 살게하는 것 같아서 수영을 사랑했다. 어쩌면 그 모든 과정을 닮은 나의 첫사랑을 추억하는 나만의 방식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수능은 대차게 말아먹었다. 또 한 번 형원이를 놓쳐버렸다는 사실에 멘탈이 완전히 무너진 탓이었다. 점쟁이 사장은 용한 신력 만큼이나 아주 못되 처먹은 것이 분명했다. 형원이가 가져간 쪽지에 내 번호와 이름이 쓰여있던 것을 수능이 끝나고 새해가 밝기 전까지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결과적으론 어머니께 잔소리를 좀 들었으나, 역 근처에 있는 대학교의 생활체육과에 진학할 수준은 되어 정말로 그 학교에 진학했다. 이 또 한 그 점쟁이 사장이 말했던 대로 이루어진 셈이어서 제법 소름이 돋았었다.

 독한 것은 채형원도 마찬가지였다. 내 번호와 이름 - 그리고 마음까지 홀라당 - 가져가버린 주제에 새해가 밝기 전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직 병원을 다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짐작했는데, 나는 형원이가 무슨 큰 수술이라도 받은 줄 알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저 나의 고3 마지막 시간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연락을 안 했던 거라고. 어쨌든 1월 1일, 나의 스무살이 밝아오던 새벽에야 형원이에게서 한 줄의 문자가 왔었다.

형, 저 형원이에요. 스무 살 축하해요.

 첫 사랑, 첫 이별, 첫 재회, 그리고 첫 고백. 나에겐 그 문자가 고백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시 한 번 형원이가 신기한 아이라 생각했다. 이제 막 교복을 입기 시작한 남자아이가 철장 너머로 몰래 쳐다보던 그 시절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아니면 형원이 역시 그 때의 철영이처럼, 나의 첫사랑을 그저 풋내기의 애틋한 연민 쯤으로 치부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든 확실한 건 한 가지.
 지난 번에도 그랬듯, 용기있는 것은 내가 아닌 형원이었다. 그의 문자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오타가 한 바가지인 답장을 보내자 형원이는 바로 전화를 걸어왔었다.

- 형, 저에요. 전화 가능해요?

 그리고 그 날 새벽, 우리는 수화기 너머로 긴긴 대화를 나누었다.



6.
 다만, 사랑이 깊어지는 만큼 통각은 더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때때로 문자를 나누며, 간혹 또는 자주 통화를 하며 우리는 시간 위에 감정을 쌓아올렸다. 건강이 정말로 나빠져 입원을 밥 먹듯이 하고 수술까지 받던 형원이는 우리의 대화가 꼭 진통제 같다고 표현했다. 형이랑 대화하면 아프던 게 싹 잊혀진다고. 그런 로맨틱한 말을 겁도 없이 나에게 했다. 그럼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나에게 채형원이란 통각 그 자체였기 때문에.
 어느 날은 형원이에게서 예고도 없이 전화가 왔다. 보통은 문자로 나에게 시간이 되느냐고 먼저 묻는 아이였기에 나는 반짝이는 휴대폰 화면을 보며 쎄함을 느껴야했다. 아니나 다를까, 깊게 심호흡을 한 뒤 받은 전화는 다시금 폐부를 찌르는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 형, 저 미국 가요.
- 기증자 못 찾아서, 인공 심장 받기로 했어요.
- 그런데, 한국에선 수술 못 한대요. 그래서 가기로 했어요.
- 얼굴 보고 가고 싶었는데...
- 요즘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서 사람들을 못 만나요.
- 그래도 이렇게 목소리 들을 수 있으니까 좋다.

 아주 무덤덤한 목소리였다. 나는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질 뻔 했지만 끝내 울지는 못했다. 왜냐면 나는 평생을 소리내어 웃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완전히 무너져내려 우는 법을 터득하지도 못했으니까. 무엇보다 형원이가 울지 않아서 나는 눈물을 흘리는 법을 알지 못했다.

'너 왜 마지막처럼 얘기해.'

 대신 대답하는 목소리에 신경질이 서렸다. 나는 심장을 완전히 도려내기 위해 바다를 건너겠다는 형원이의 말을 듣고 화를 내는 모자란 놈이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형원이는 되려 풋내나는 웃음소리를 들려주었다.

- 형, 내 걱정해주는 거에요?
- 어뜩해. 우리 형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
- 걱정마요. 나 잘 하고 돌아올게.

 씩씩한 목소리 뒤로 얼핏 두려움이 스쳐지나간 것 같았으나 형원이와 나 그 누구도 내색하진 않았다.

- 그래서 말인데, 나 고백할 게 하나 있어요.
- ...나, 형 좋아해요.

 형원이 손에 쥐어져있던 나의 심장이 아주 아주 높은 곳에서 뚝 떨어져 아스팔트 바닥에 뭉개졌다. 진짜 어떡하지, 형원아. 나 너무 한심하고 비겁한 것 같아. 이번에도 또 다시 용기를 내는 건 너였구나. 나는 이번에도 니가 떠난다면, 너의 스무살을 영영 볼 수 없을까봐, 고작 그런게 두렵고 무서워서 말을 아꼈는데, 용감한 너는 꼭 돌아오겠다는 말 뒤에 사랑 고백까지 덧붙이는 구나.
 나는 밭은 숨만 헉헉 겨우 내쉬며 형원이의 정적을 들어주었다.

- 그러니까 나 없는 사이에 나 몰래 누구 만나지 말고, 나 없다고 첫사랑같은 거 만들지도 말고.
- ... 꼭 기다려줘요.
'...그래. 기다릴게.'

 이미 나의 모든 첫 번째는 니가 가져갔어, 형원아. 근데, 이 대답은 너가 돌아오는 날 해줄래. 이런 말들은 속으로만 삼키며 나는 형원이가 전화를 끊는 순간까지 그 애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사실은 조금 겁이 난다는 솔직한 고백도, 비행기는 처음 타는 거라 긴장된다는 천진난만함도, 수술은 겁나지 않는데 말이 안 통하는 곳에서 오래 있어야 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는 고해성사까지도.
 얼마나 긴긴 시간을 기다려야할지 너도, 나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들어주는 것, 그리고 머릿 속에 새겨넣는 것. 기다리는 동안 해야할 일들도 차분히 머릿 속에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건강할 것, 울지 말 것, 그리고 사랑한다 말하는 법을 연습할 것.



7.
 우리는 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거칠고 서툰 밤들을 사랑했다.

'나 형이랑 섹스 한 번 하려면 큰 결심 해야돼요. 안 그러면 심장 멎을 수도 있어.'
'...또 못 된 소리 하지, 너.'

 형원이의 다부진 어깨가 나를 내리 눌렀다. 못 본 사이에 나보다 훌쩍 더 커진 형원이는 체격으로 나에게 덤벼오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형원이가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이며 내 목에 입을 맞췄다. 물컹하게 닿는 혀의 감촉이 선명하고 날카로웠다. 그의 혀가 쓸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화상이라도 입은 것 마냥 뜨겁게 달아오른 탓이었다. 나는 내 위로 쏟아져내리는 형원이를 받쳐들며 침대 위로 천천히 몸을 뉘였다. 아직도 나에게는 아주 세심하게 세공된 유리공예 마냥 위태롭고 예쁜 인형 같았거든.

'나 진짜로 물어봤다니까요?'

 내 이마와 코에 한 번 씩 입을 맞춘 형원이가 잠시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곤 품이 넉넉하게 남는 흰색 티셔츠를 단숨에 벗어버리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 사이 그의 아래에 눌려 착실하게 발기하고 있는 중이었고.

'인공 심장 달고 섹스하다 죽은 사람 있냐고.'

 형원이는 또 다시 못된 소리를 내뱉었다. 진작에 나체였던 나와 다르게 트레이닝 바지를 껴입고 있던 형원이는 벗어야 할 것이 아직도 한 바가지였다. 나는 그의 못된 말버릇을 타박하는 대신 형원이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그의 단단한 성기를 움켜쥐었다. 뜨거운 것이 요동치듯 내 손 안에서 호흡했다. 동시에 나른한 신음 소리가 형원이 입을 가르고 새어나왔다. 만족스러운 소리에 나까지 다시 한 번 몸이 달아올랐다.
 그러니까 우리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첫 연애를 시작했다. 거의 2년 가까이 소식이 없던 형원이가 연락이 닿은 건 그 애의 생일날이었다. 메신저로 생일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보낸 후 몇 시간이 지나서 불시에 날아온 답장이었다. 습관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제멋대로 뛰었던 것 같다.
 내용은 태풍같았지만 형원이의 말투는 무던했다. 수술은 잘 끝났고, 한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잘 이겨냈다든가. 인공 심장에 적응하느라 몇 번이나 염증이 도져서 꽤나 고생을 했다든가. 또는 재활하는 동안 운동은 커녕 제대로 걷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아서 답답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 모든 것을 아주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기까지 걸린 시간이 바로 그 2년에 가까운 기다림이었을테다. 나는 형원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이렇게 늦게 연락한 거냐고 따질 수 없었다.

'근데, 다행히 없대요...'

 나의 유두를 짓누르는 형원이의 혀가 지나치게 뜨거웠다. 아까 목덜미를 훑고 가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달궈진 것 같았다. 한 번도 성감대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건만, 그가 강한 압력으로 빨아올릴 때면 따끔하게 아려오는 감각에 머릿 속이 온통 엉망이 되었고, 아픈 유두를 살살 달래듯 혀 끝으로 둥그렇게 굴려댈 때면 간지러운 쾌감이 몸 구석구석을 침투했다. 나는 형원이가 주는 쾌감을 온전히 느끼면서도 그의 것을 잡고 문지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반쯤은 나 혼자 달달 떨고 있는 게 억울한 것도 있긴 했지만, 그냥 손 안 가득 잡히는 감촉이 지나치게 외설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는 게 좀 더 맞는 표현일거다.
 한계에 다다른 것인지 내 손을 거칠게 거둬낸 뒤, 한 쪽 팔로 내 얼굴 옆으로 눌러 지탱한 채 형원이가 급하게 바지를 벗었다. 이미 내 것에서 흘러나온 체액으로 흠뻑 젖은 구멍을 손 끝으로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랍을 뒤져 콘돔을 찾는 손길이 성급했다.

'그냥 해.'

 나는 형원이를 재촉했다. 지금 당장 넣어주지 않으면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릴 것 같았다. 아주 오랜 기간을 돌고 돌아서 연애를 시작했지만, 서로 만지는 것은 물론 만남 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 사이였다. 형원이는 미안한 얼굴을 한 채 나에게 기다려달라고 빌었고, 나는 불평 한 마디 뱉어내지 않고 그 모든 시간을 견뎌냈다. 지지부진하게 흐르는 시간 동안 우리는 겨우 손을 잡고, 겨우 입을 맞추고, 겨우 껴안았다.
 섹스가 허락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긴긴 재활을 거쳐 골격도 몸집도 자라난 형원이의 의지 덕분이었다. 조금 무리하는 듯 보인 형원이가 걱정되어 말을 걸면 그는 활짝 웃으며 쑥스럼이 하나도 없는 말투도 대답했다. 형이랑 섹스 못 해보고 죽으면 억울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나는 그의 못된 말버릇을 고쳐주지 못하는 비겁한 애인이 되어있었다.

'그냥 넣으면 아파요.'
'괜찮아...'
'형, 그래도.'
'콘돔 없이 니꺼 받아보고 싶어서 그래.'

 나는 조급함을 표현했다. 생 살이 쓸리는 감각이 얼마나 아플 지 고민 따위는 이미 저 먼 곳으로 날려버린 뒤였다. 당장이라고 형원이와 모든 몸의 부위가 맞물리지 않는다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굴었다.
 명백한 불안감의 징조였다. 나는 가끔씩 형원이와 보내는 모든 시간이 혹시라도 거짓말이면 어떡하지? 하는 못된 생각에 잠식되곤 했는데, 이렇게 섹스 도중 흥분이 최절정에 다르면 그 불안 역시 같은 부피만큼 정비례하며 커져가곤 했다. 나는 칭얼대는 대신 양쪽 다리로 형원이의 허리를 바짝 조여당기며 그를 품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

 마침내 뜨거워 데일 것 같은 형원이가 나를 뚫고 들어왔을 때 나는 인내심의 한계가 무너져 사정해버렸다. 삽입 한 번만에 가버린 것은 첫 섹스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그것도 모자라 쾌감이 뇌를 마구 헤집어 놓고 있어 바짝 올라서있던 나의 중심에서 허연 액체 줄줄 터져나왔다. 아주 음란하고 외설적인 장면이 싸구려 야동 같아보였다. 형원이는 나의 절정에 자극을 받았는지 일말의 틈도 보이지 않도록 몸을 바짝 붙여 쳐올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형원이 배에 눌린 나의 것은 다시금 착실하게 발기하게 되었다.
 아, 아! 단발마의 비명같은 신음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시야가 흐려졌고 모든 감각은 마비되어 오롯이 손 끝과 아랫쪽 구멍으로만 온 몸의 신경이 쏠린 상태였다. 살결이 부드러운 형원이의 등을 마구 긁어댔다. 생채기가 났을텐데도 그는 나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에만 집중한 모양이었다. 그 때 였다.

'혀엉... 사랑해요.'

 곧 숨이 넘어갈 것 처럼 급하게 몰아붙이던 형원이가 한숨처럼 고백했다. 척추를 따라 두 번 째 절정이 기어오르고 그의 커다란 것이 내 속에서 날뛰는 사이, 그는 다시 반복해서 내 귀에 속삭였다.
사랑해요, 형.

'같이 가요, 우리.'

 두 번 째 절정이 이르렀을 땐 기어이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8.
 그리고 채형원은 나에게 유일한 마지막이었다. 언젠가 한바탕 섹스가 끝나고 형원이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형은 진짜 무던한 사람인 것 같아. 어떻게 감정 조절이 그렇게 능숙해? 그런 형원이에게 나는 뭐라고 했더라? 사실 내 속은 썩어문드러져서 그런 유치한 감정들이 끼어들 틈 조차 없다고 했던가. 아마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형원이에게 직접적으로 하지 못했을 거다. 에둘러 표현해보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것도 같다. 나는 이미 열 네 살 그 운동장에서 성장을 멈춘 덜 떨어진 사내녀석이었으니까.

'형은 웃는 게 참 예쁜데, 웃음 소리는 못 들어본 것 같아요.'

 형원이는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소리를 내서 웃는 것이 너를 기만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참는 중이라는 말은 끝끝내 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할 정도로.

'형이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매일이 불안하고, 나는 늘 높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그게 너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하면 형원이는 상처받을 아이라 나는 또 다시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나쁜 뜻은 없다. 그 정도로 내 세계는 채형원이라는 불안과 고통으로 가득 채워져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점을 썩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형원이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매 순간 일희일비를 그가 결정하는 삶이 정말로, 썩 만족스럽다.

'근데 형, 울지 말아요.'
'뭐야. 나 살면서 운 적 없는데?'
'그럴 것 같아.'
'근데, 왜.'
'그래도 앞으로도 쭉 울지 말라구.'

 형원이는 의미심장한 말을 조심스럽지 않게 했다. 심장이 멎을 것 같다느니, 이대로 죽어버려도 좋겠다느니 하는 못된 말들 역시 조심성 없이 내뱉는 편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끈질기게 살아내는 중이었다. 형원이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와 동거를 감행했다. 우리 사이를 커밍아웃 한 적이 없기에 그런 의미의 반대는 아니었다. 다만, 언제 다시 발작이 일어나거나 갑자기 쓰러질 지도 모르는 형원이가 남과 함께 살겠다는 사실 그 자체로 덜컥 겁이 나신 탓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형원이를 혼자 집에 두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만큼 제가 많이 아끼는 동생이니까요. 걱정마세요. 그런 말들로 우리는 우리의 관계를 포장하였던 기억이 있다.
 같이 사는 것은 서로 맞춰가는 것 그 이상이었다. 한 번은 형원이가 발작이 일어나 쓰러진 적이 있었다. 나는 패닉했고, 병원에 실려간 형원이는 눈을 뜨자마자 나에게 부탁을 했었다. 부모님껜 비밀로 해달라고. 나는 아주 조금 상처받고 아주 많이 두려워졌다. 놀란 내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무사히 형원이가 무사히 퇴원했다는 사실 뿐이었기 때문에.
 그 후로 매일 아침, 나는 잠든 형원이의 코 끝에 손을 대보는 버릇이 생겼다. 체육관에서 수영강사로 일하면서 꾸준히 심폐소생술 자격증도 따고 훈련도 이어갔다. 쌕쌕 거리며 잠든 형원이의 가슴팍이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걸 두 눈으로 보면서도, 그의 코 끝에 손을 대보는 것은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날들을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형원이의 서른 살 생일이었다.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그에게 손 편지를 썼었다. 문득 과거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그에 대한 답장을 글로 적어내린 참이었다. 살면서 절대로 울지 말라고, 가볍게 말하던 형원이.

남자는 살면서 세 번 운다는 바보같은 말이 있잖아.
근데 나는 두 번이면 충분할 것 같아.
한 번은 니 말대로 너의 심장이 멎어버렸을 때.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우리의 사랑이 완전히 끝나버렸을 때.
니 말대로 내가 평생 울지 않게 해줘.
너의 서른을 축하해, 형원아.




9.
 운동장에서 달음박질 하며, 그 순간 가장 행복해보이던 형원이, 그리고 꼭 그 때 처럼 철장 너머에서 그 애의 시원스러운 고통을 지켜보는 나.
가끔씩 꾸는 꿈이 있다.
 수십년을 연습했지만 끝내 사랑한단 말을 건네지 못한 채 끝이나는 우리의 사랑 같은 거.

"그래서, 얘기했니?"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던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했다. 다사다난했던 젊은 시절과는 다르게 꽤나 우아하게 나이가 든 그 때 그 편의점 사장님이다. 요즘은 자리를 옮겨 다시 카페를 열었다고 했다. 인사치레로 여전히 안 늙고 그대로라고 했다가 핀잔을 받았다. 요즘 40대는 옛날 20대랑 똑같다나 뭐라나.

"글쎄요."
"웃기는 애들이다."

 그녀는 꼬았던 다리를 풀러 발목을 한 번 빙그르 돌렸다. 이내 반대쪽 다리를 들어 꼬으며 재떨이에 담배를 툭툭 털었다. 신기인지 아니면 단순한 촉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다른 그녀의 감은 그녀가 나와 형원이의 관계를 아는 유일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종종 오며가며 그녀의 카페 들리는 날엔 이렇게 마주앉아 고민 상담 비슷한 걸 해주는 지경이 되었다.

"너, 울었구나."

 그녀는 나의 멀끔한 얼굴을 보며 생뚱맞은 소리를 한다.

"제가요?"
"미남은 우는 거 아니야, 얘."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그녀는 내 얼굴이 아닌 내 어깨와 가슴께 그 어딘가를 응시하며 말했다. 정말이지 그녀 앞에선 모든 것이 다 꿰뚫리는 기분이 든다.

"나중에 또 올게요. 약속이 있어서."

 내 말에 그녀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인다. 커피 값은 안 받겠다는 너스레까지 곁들이자 제법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나 역시 그녀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정말 커피 값는 내지 않는다. 대신 옆에 놓아둔 꽃다발을 들었다. 요 앞에서 샀는데도, 조금만 더 늦으면 시들어버릴까 조급한 마음이 든 탓이다.
 오랜만에 그 곳에 가기로 했다. 무슨 무슨 중학교. 엉성하게 꼬아 만든 철장을 두고 맞닿아있는 무슨 무슨 초등학교. 요즘은 아마 운동장이 다 인조 잔디로 바뀐 것을 안다. 어린 애들이 뛰어다닐 때 흙먼지가 날리는 낭만 조차 사라진 곳이지만, 그 곳엔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그 곳을 향하는 동안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어쩌면 아직 어리던 그 날로 돌아가는 것 같은 꿈 같은 기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젠 많이 작아진 학교 건물이 보이고, 여전히 경비를 지키고 계신 어르신도 보인다. 한결 같이. 어르신께선 나를 발견하시곤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신다.

"얼른 들어가봐. 내가 보내줬다는 얘기는 하면 안 되고."

 소곤거리시는 모습에 살풋 웃음까지 서린다. 여전히 소리를 내어 웃는 법은 모르지만, 나는 확실하게 어르신께 미소를 띄워드렸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내 화면 속 날짜를 확인한다.
 6월 18일.
 여름이 시작된 어느 날의 생일이다. 여느 해보다 유독 빨리 시작된 올 해의 여름은 수십년 만에 최고 온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고작 6월일 뿐인데도 푹푹 찌는 날씨에 이마엔 촉촉한 땀이 맺힌다. 그런 더위 속에서도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피해 구석을 따라 걸었다.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난 그 곳에 다가가 한참을 기다렸다. 그 사이 꼬죄죄한 모습으로 뛰어다니는 어린 녀석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가끔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기분에 취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아직도 나는 형원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단 것을 깨닫는다.
 머지않아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울진 않았다.
 오늘 나의 모든 로맨스를 담아 얘기해주면 그만이기 때문에.



10.
 그 아이는 눈에 띄게 마르고 여름에 부는 선선한 미풍보다 가늘었다. 그 애의 이름은 채형원. 동시에 그 애의 이름은 첫사랑이었다. 어떻게 잊겠어. 좋아하니까, 그리고 좋았으니까. 다만, 사랑이 깊어지는 만큼 통각은 더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우리는 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거칠고 서툰 밤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채형원은 나에게 유일한 마지막이었다. 운동장에서 달음박질 하며, 그 순간 가장 행복해보이던 형원이, 그리고 꼭 그 때 처럼 철장 너머에서 그 애의 시원스러운 고통을 지켜보는 나.  열 두 살 그 애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그 애를 닮은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사랑해, 형원아."

 마침내 낭만의 계절이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