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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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이 죽었다. 그의 지병은 태생적인 것이었기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들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조금 허망했던것 같다. 형원은 그와 나이차가 10살도 넘게 나는 집안의 막내였다.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싱그러운 볼을 예쁘게 빛내는 형원과 달리, 형은 늘상 피곤하고 창백한 얼굴에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형식적으로나마 형원과 식사자리를 할 때면 그는 늘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형원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는 그 숨막히는 자리를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꾀를 썼지만, 고등학교를 입학 할 무렵즈음 부터는 형에게 측은지심 비슷한 것이 생겨났다. 누구나 선망할 만한 모습으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는 형원을 마주할 때 마다 형은 아슬하게 꺼져들어가는 제 운명을 비관했을 것이다.

 마침내 성인이 된 형원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하고싶다는 것을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고 가지고 싶은 것은 싱거울 정도로 쉽게 손에 떨어졌다. 형원이 미묘하게 오만함과 동정심을 담은 눈으로 자신을 본다는것을 형이 깨닫고 나서 부터는 정기적인 식사자리마저 일년에 한두번 볼까 말까 할 정도로 뜸 해 졌다. 형은 갈수록 만사에 냉소적인 인간이 되어갔다.

 그런 형이, 적지않은 액수의 후원금을 본인의 별장 사용인 앞으로 남겨두었다. 유언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길고 지루한 법률 서류를 대충 훑어보던 와중에 유일하게 형원의 관심을 끈 대목이었다. 살아생전 형의 차가운 얼굴을 잠깐 떠올린 형원은, 서류상 짧게 기재된 주소를 다시 읽어보았다. 형원으로서는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시골 구석의 외진 곳이었다. 이렇다 할 취미도 없이 늘상 일에만 파묻혀 살던 사람이,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본인 소유의 별장이라니. 두 집 살림이라도 차린 것인지 궁금했다. 변호사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었지만, 형원은 오랜만에 흥미로움을 느끼며 망설임 없이 겉옷과 차 키를 집어 들었다.



“ 별장에 사용인이 한 명 있다고 들었는데, 본인인가요? ”
“ 어… 네. 맞습니다. ”

 말을 꺼내면서 형원은 속으로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에서 차로 두어시간도 넘게 떨어진 이 외딴 산 속에 정말 말처럼 그럴싸한 ‘별장’ 이라도 지어놨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단촐한 외관의 재래식 한옥 주택이 형원을 맞이했던 것이다. 이미 반 쯤 열린 채 였던 오래된 철제 대문을 마저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이전 시골집의 구조를 변형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는지 작은 앞마당과 방으로 이어지는 툇마루가 보였다. 그 마당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식재료로 보이는 무언가를 흐르는 수돗물에 씻어 다듬고 있던 남자는 형원의 등장에 조금 놀란듯 돌아보며 몸을 일으켰다. 엉거주춤 한 자세임에도 몸을 펴고 선 남자는 키가 평균 이상으로 훌쩍 큰 형원과 엇비슷한 눈높이를 가지고 있었다.

“ 채수원씨 알죠?”
“.. 네.”
“ 죽었어요.”

 그저 정보 전달의 목적만 있는 양 단조로운 형원의 목소리에 남자의 눈이 잠시 커지는 듯 싶더니, 곧 다시 차분한 얼굴로 돌아왔다.

“ 제가.. 뭘 하면 되죠.”

 그리 놀라지 않는다. 격한 반응을 기대한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그리되었느냐는 흔한 질문조차 하지 않는 남자를 보면서 아마도 형의 지병을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형원은 판단했다. 할 말을 신중하게 고르는 타입인지 남자는 일관되게 반박자 정도 느린 템포로 대답을 했다. 시선을 내리깐 채 나지막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조금 어물거리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글쎄. 일단 집은 처분하기로 했어요.”

 거액의 후원금에 대한 이야기는 부러 꺼내지 않았다. 남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기도 했고, 어차피 절차적 이야기는 나중에 변호사가 오면 알아서 할 일이었다. 그런것 보다는 지금 눈 앞에 있는 남자의 존재가 훨씬 형원의 흥미를 돋우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에는 이른 날씨였기에 가벼운 겉옷까지 걸치고 있던 형원과 대조되게, 남자는 얇은 흰색반팔티에 무릎 위로 오는 반바지 차림이었다. 그럼에도 드러난 목덜미나 이마 가장자리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솔직히 이런 외딴 곳에서, 형원과 나이차도 얼마 안 나 보이는 젊은 남자가 혼자 형의 별장을 돌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아까부터 은근하게 형원의 후각을 자극하고 있는 달짝지근한 향은 잘못 맡은게 아니라면,

“ 저, 비가 많이 오는데. 잠깐 앉았다 가시는게 좋을것 같은데요.”
“ 네, 그러죠.”

 한 두 방울 가볍게 떨어지던 빗방울이 어느새 세찬 빗줄기로 바뀌어 있었다. 차를 타고 왔기에 별로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오면서 보았던 가로등 하나 없는 비포장 도로를 떠올리며 형원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여름 소나기 라는게 금방 그칠 것 같기도 하고. 그새 습기를 머금어 묵직한 나무냄새가 짙어진 툇마루 위에 대충 비를 피해 형원이 걸터 앉으니, 남자가 부엌으로 보이는 맞은편 실내공간에서 잠시 달그락 거리더니 이내 차를 내어왔다. 작은 쟁반 위에 올려진 찻잔 두 개는 그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 이었다.

“ 인사가 늦었네요. 채수원씨 친동생 채형원 입니다.”
“ 아.. 네. 저는, 그.. 손현우요.”

 누구에게 자기 소개를 하는것이 처음인 사람처럼 남자가 형원의 인사에 어색하게 대꾸했다. 자기 이름을 고민하는 듯 버벅거리는 모습에 형원이 순간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가 그런 형원을 멀뚱히 보더니 곧 민망한듯 젖은 양손을 바지에 슥 문질러 닦았다.

 현우가 보기에 형원은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수원과 외형적으로 닮은 모습이었기에, 처음 마주했을 때 그의 가족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물론 차갑고 예민한 분위기의 수원에 비해 형원은 훨씬 생기가 넘쳤고 동그란 얼굴형에서 오는 어린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찻잔을 쥐고 있는 희고 마른 손가락 처럼 똑 닮은 구석도 있었다. 내내 사무적인 표정이던 형원이 불시에 웃음을 터뜨렸을 때 현우는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멍청하게 보였을 법한 얼굴로 그를 넋놓고 쳐다 볼 수 밖에 없었다.

“ 쭉 여기 살았어요?”
“ 네, 한 5년 정도..”

 짧게 고개를 끄덕 하며 대꾸하는 그의 몸에서 또다시 달큰한 향이 새어나왔다. 역시 틀리지 않았다. 한차례 쏟아 부은 비 냄새에 섞여 습하고 희미해진 상태였지만, 우성알파의 예민한 동물적 감각으로는 놓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남성체 오메가는 흔치 않은데.. 아무리 약하다고는 해도, 조절을 못하는 것 처럼 불안정하게 새는 향 때문에 형원은 머리가 살짝 어지러움을 느꼈다.

“ 다음번에는 아마 형의 변호사가 올 거예요.”
“ 준비해야 할 게 있을까요.”
“ 뭐 현우씨가 준비할건 없을것 같고, 앞으로 뭘 하고싶은지나 생각해 보면 어때요.”

 또 별 말없이 고개만 끄덕, 한다. 무뚝뚝한듯 수더분한 남자였다. 형원은 겨우 조금 잦아들기 시작한 빗소리에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키며 돌아 갈 채비를 했다. 뒤따라 일어 선 남자로부터 미미하게 따라붙는 향에, 형원은 고민 끝에 슬쩍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 그, 페로몬은 좀 조심하는게 좋겠어요.”

 현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형원을 쳐다보았다. 몇번 끔뻑이던 눈으로 뒤늦게 의미를 알아 차린 그의 귓바퀴가 희미하게 달아 올랐다.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황으로 굳은 얼굴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 형원이 빠르게 대문을 나서며 사라졌기에 현우는 저도모르게 참았던 숨을 얕게 내뱉으며 문을 닫았다. 알파니 오메가니 하는 형질은 말그대로 특이 체질이며,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었기에 여태까지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 온 현우였다. 본인이 오메가 형질이라는 것도 부주의하게 다쳐 치료를 위해 찾았던 병원에서 우연히 알게 된 것이어서, 어쩌면 평생 모른 채로 살아갔을 수도 있었다.

 현우의 인생은 몇 없는 인간관계와 일련의 사건들로 단순하게 정리 할 수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사고로 한 날 한시에 돌아가시고, 친척 중 어느 누구도 현우를 데려가려 하지 않아 결국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특출 날 것 없는 무던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나이가 차 원을 떠나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정기적으로 고아원을 후원하던 재단의 대표인 수원이 현우에게 자신과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별다른 특기도 꿈도 없던 현우에게 결정은 쉬운 일 이었으며, 그 이후로 쭉 이 조용한 산 속의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세상 물정에 둔한 현우가 대충 봐도 대단한 집안의 자제 같았던 수원이 왜 애초에 현우에게 관심을 가졌는지는 잘 몰랐다. 이제 그가 떠났으니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현우의 단조로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집안에 익숙한 적막이 내려앉자 그제서야 그의 동생을 통해 전해들은 소식이 현실로 다가왔다. 눈가가 조금 시큰거리는 것도 같았다. 형원이 떠난 자리의 반 정도 비워진 찻잔을 가만히 바라보던 현우가 불필요한 생각을 떨치려는 듯 홧홧해진 눈가를 손등으로 몇번 문질러 닦았다.


 형원이 다시 찾아온 것은 첫 만남 이후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였다. 이번에는 주인 없는 텅 빈 집이 형원을 맞이했기에, 지난 번 방문 이후로 익숙해진 툇마루에 앉아 현우를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조용한 집 안을 휘 둘러보니 구석구석 먼지하나 없이 깔끔한 상태였다. 오래된 집이지만 부지런하게 관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지난 번 만났던 현우의 우직한 모습은 게으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긴 했었다.

 공기는 여전히 습했지만 오늘은 하늘도 맑고 마침 학기 마지막 수업도 끝이 난 참이어서 형원은 꽤 여유로운 기분이 되었다. 원래 다시 이 집을 찾을 생각은 없었다. 후원금의 주인공을 확인한 것 만으로 형원의 호기심은 충분히 충족되어 나머지 귀찮은 일은 참견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번 마지막으로 보았던 현우의 얼굴이 계속 마음에 걸려 결국 지금 여기 있는것이다. 내내 무덤덤한 표정이던 덩치 큰 남자가 당황으로 얼굴을 물들인 찰나의 순간은 꽤 인상깊은 것이었다. 형원이 인심쓰는 듯 별장 건은 본인이 처리하겠다고 했더니, 안그래도 코앞에 떨어진 일이 산더미였던 집안 전담 변호사는 형원에게 고마움의 눈물을 글썽였다.

 오는 길에 들른 읍내의 부동산 주인에게 집의 매매건도 부탁해두고 온 참 이었다. 말이 많아보이는 중년의 여자는 멀끔하게 차려입은 형원의 행색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노골적으로 훑어보았다. 그 집을 팔겠다고? 거기 총각이 하나 살지않수? 고개를 한번 가볍게 끄덕여 보인 형원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되묻자, 여자는 하고싶은 말이 많은 듯 보였지만 냉랭한 얼굴의 비싸 보이는 옷을 입은 외지인에게 더이상의 말을 얹지 않았다.

“ 어, 오늘 오시는 줄 몰랐는데..”

 오래 앉아있기에는 따가운 오후의 햇살이었지만 일광욕을 하듯 눈을 감고 여유를 부리던 형원이 슬슬 나른하게 밀려오는 졸음을 참던 찰나였다. 투박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마당에 들어선 현우의 양 손에는 단내가 나는 과일 따위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전화 번호를 주고받았던 사이도 아니니 당연히 불시에 올 것이라 예상을 했어야 마땅하지만, 현우는 생각지 못한 형원의 방문에 얼른 꾸벅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빨리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지난번을 마지막으로 이제 직접 오지는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 좀 드시겠어요.”

 지난번과 같은 쟁반에 이번에는 단정하게 잘라진 복숭아와 자두가 내어져 왔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형원이 예의상 가장 작은 조각을 하나 집어들어 베어물었다. 입안에 달큰한 맛이 강하게 퍼지는 것이 형원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앞에 앉은 현우는 다른 모양이었다. 햇살에 보기 좋게 그을려 가무잡잡한 손으로 벌써 두개 째 복숭아 조각을 집어먹는 모습이, 보기와 다르게 달달한 것을 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저번 보다는 긴장이 풀어진 것인지 우물우물 먹는데 집중한 얼굴이 진지해 보여 형원은 속으로 조금 웃었다.

“ 시장에 다녀오는 길인가봐요?”
“ 아뇨. 건너편 과수원 일을 도와주고 있거든요. 지금 손이 모자라는 철이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과일나무와 열매를 정성스레 돌볼 현우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퍽 어울렸다.

“ 오늘은 낙과를 많이 얻었어요.”

 뿌듯한 듯 슬며시 미소를 띄니 눈꼬리가 아래로 쳐지며 순한 인상이 된다.

“ 마을에 젊은사람이 몇 없을 것 같던데, 여기저기 인기가 많겠어요.”
“ 아.. 그런것 보다는 가끔 도와드려요. 보통은 집에서 혼자 텃밭 돌보기 정도만.. ”

 현우가 말끝을 흐렸다. 사실 이 작은 마을에서 현우의 평판은 그리 좋은 편이 못 되었다. 남의 이야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성정이었지만,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과 수근거림은 자연히 알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산 끝자락 외딴 집에 혼자 사는 젊은 남자와 그를 보러 일주일이 멀다 하고 드나들던 비싼 자동차. 게다가 근래에는 또 다른 새로운 남자가 그 집을 방문한다. 단조로운 시골 마을에서 그만한 이야깃거리도 또 없었다.

“ 술 한잔 할래요?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묘하게 가라앉은 현우를 눈치챈 형원은 본인이 말을 꺼내면서도 이걸 과연 무슨 연이라 해야하나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한낮의 뜨거웠던 태양이 풀이 죽어 앞에 앉은 남자의 등뒤로 발갛게 물을 들이며 넘어가는 모습에 조금 충동적인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현우는 의외의 제안에 눈을 꿈뻑이며 형원을 쳐다보았다가, 곧 짧게 고개를 끄덕 했다.

“ 근데 집에 마실만 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가까운 가게로 갈까요.”



 현우는 옆에 나란히 걷고 있는 형원을 흘끔 쳐다보았다. 생각이 짧았다.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했지만, 현우에게나 그랬지 30분 정도를 읍내까지 걸어가야 하는 길이 형원에게는 번거로울 수 있었다. 형원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라, 기분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초저녁이어도 여전히 후덥지근한 공기에 현우의 목덜미에서는 진작에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지만 형원은 덥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곁눈질로 쳐다본 빚은듯이 수려한 이목구비는 집을 나설 때와 다름없이 뽀송한 그대로였다.

“ 생각보다 멀죠? 차를 타고 가는게 나을 뻔 했네요.”
“ 어차피 술 마실거니까, 괜찮아요 산책 할 겸.”
“ 네, 조금만 더 가면 되요. 여기가 그나마 제일 가까운 식당이라..”
“ 외롭지 않아요? 이런 외진 곳에 살면.”

 이어진 형원의 질문에 현우는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달싹였다. 외로웠던가? 깊게 생각 해 보지 않은 감정이었다.

“ 별로.. 원래 혼자였어서요.”
“ 형이 자주 왔나보죠?”

 직접적인 질문에 또 말문이 막혔다. 곤란한 듯 눈을 굴리는 현우를 보며 형원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대답 안해도 되요. 웃음기 섞인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다시 말없이 조용한 시골 둑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첫만남 이후 이미 현우의 신상 조사는 다 끝낸 터였다. 운이 없어 쭉 외톨이인 인생에 유일한 인간관계였던 형마저 떠났으니, 이제 그는 완전한 혼자였다.

“ 다 왔네요.”

 앞장 선 현우가 먼저 가게의 미닫이 문을 열며 들어갔다. 높이가 낮은 문 때문에 머리와 어깨를 꾸깃하게 접으며 들어가는 현우의 등을 보며 형원도 고개를 숙이고 뒤따랐다. 자주 들르는 가게인지 익숙하게 구석 자리로 향한 현우가 앉기좋게 형원의 의자를 한쪽으로 빼 주었다.


“ 입에 안맞으세요? 다른걸 시킬까요.”
“ 아뇨. 원래 안주를 잘 안먹어서.”

 젓가락을 쓰는둥 마는둥 음식엔 별 관심이 없어보이는 형원이 소주만 홀짝대는 것을 지켜보던 현우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까 낮부터 아무것도 안먹었으니 허기가 질텐데. 아무래도 좀 더 번듯한 식당에 갔어야 하나 걱정이 되는 현우였다. 이 주변에는 어디를 가도 형원의 취향에 맞는 곳은 없을게 분명할테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였다.

“ 잘 드시네요.”

 반대로 현우는 깔끔하게 앞에 놓인 접시를 해치우던 참이었다. 제 몫의 뜨끈한 국수 한그릇을 금세 다 비우고 동글동글하게 모양잡힌 모듬전을 야무지게 집어먹고 있었다. 기름에 반들해진 입술이 통통하게 모아졌다.

“ 네, 자주 와서 먹는 곳이거든요.”

 술기운이 살짝 도는데다가 배가 차 기분이 좋은 것인지 또다시 웃음기를 띈 눈꼬리가 얕게 접힌다. 형원은 그 둥근 눈매라던지 이전에 보았던 것 처럼 조금 붉어진 그의 귀 끝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솔직히 형을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키도 덩치도 커다란 데다가 말재주도 없는 무뚝뚝한 남자를, 이런 시골 구석에 숨겨두고 혼자 아끼듯 바라보았다는 것이. 게다가 형은 베타였다. 손현우의 이 달짝지근한 향이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는.

“ 형원씨는 수원 형이랑 참 닮았어요.”
“ 그런가요.”
“ 네. 사실 처음에 좀 놀랐거든요. 근데 보다보니 확실히 다른 것 같기는 하네요.”

 빠른 속도로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현우는 꽤 취기가 올라 온 모양이었다. 서스럼 없이 형의 이름을 말하며 평소보다 풀어진 얼굴로 말을 건넨다. 성인이 되고서 제대로 된 인간관계라는 것을 겪어보지 못했을 그는 또래인 형원과의 이런 자리에 은근히 들뜬 듯 했다. 여전히 자각없이 흘려대는 오메가 향에 형원은 가슴이 조금 울렁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그냥 형원이라고 편하게 불러요. 제가 네 살이나 어려요.”
“ 네? 어… 응.”
“ 현우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생각지 못했던 호칭에 현우는 심장이 괜히 평소보다 빨리 뛰는 기분이었다. 입을 열면 바보같은 소리가 튀어나갈 것 같아서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순식간에 뜨거워진 귀를 형원이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형원은 보통때와 같은 얌전한 얼굴로 술잔만 홀짝이고 있었다. 다가가기 어려운 타입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의외로 붙임성이 좋은걸까. 하긴 사회생활이란 것이 전무한 현우 자신이 사람을 대하는 모든 면에서 서툴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것 같았다. 형원의 섬세하게 내리깔린 촘촘한 속눈썹을 저도 모르게 쳐다보고 있던 현우가 갑자기 마주친 눈동자에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 이제 그만 일어나죠.”
“ 어, 그럴까.”
“ 저는 시내 적당한 숙소에서 자야겠네요. 차는 내일 아침에 찾으러 갈게요.”

 형원이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고 현우도 뒤를 따라 나섰다. 계산을 하고 가게 밖으로 나올때 까지 고민을 하던 현우가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 길이 어둡고 익숙치 않을텐데.. 하루정도면 그냥 집에서 같이-”
“ 괜찮아요, 나랑 너무 가까이 있으면 형도 좋을게 없어요.”

 현우는 걱정이 되어 한 말인데, 단호하게 말을 잘라내고 돌아서는 형원의 행동이 어쩐지 선을 긋는 것 같았다. 게다가 가까이 있으면 좋을게 없다니, 아리송한 말이었다. 그래도 조금 친밀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었나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에게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불편할 터였다. 예전 어느날 수원이 실수로 두고 간 지갑에서 우연히 그의 가족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부인과 아이 하나를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 제 친형의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을 마주하게 된 형원에게 그 문제의 당사자인 현우 자신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떠난 가족의 남겨진 문젯거리를 최대한 원만하게 매듭짓고 싶은, 딱 그정도의 점잖음과 상냥함일 것이다. 현우는 괜히 마음이 들뜬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평소와 다름없이 더디고 고요하여 여름 풀벌레 소리를 빼고는 흙길을 스치는 제 발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후덥지근하고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아 있는것이 한바탕 또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 하..”

 형원이 난감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뜨거운 볕이 내리쬐던 바로 어제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부터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히는가 싶더니 곧 무서운 기세로 비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심해지기 전에 얼른 서울로 돌아갈 요량이었지만 이 산기슭의 집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인 흙길이 물러져 버렸다. 요근래 며칠간 이어진 장마로 조금씩 무너지던 것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게 된 모양이었다. 차를 움직이려 할 수록 바퀴가 헛돌며 진흙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 뿐이었다.

“ 어쩌지, 길이 좋지 않아서.. 견인 차도 들어오기 힘들텐데.”

 비를 그대로 맞으며 뒷쪽에서 열심히 온 몸으로 차를 구제 해 보려 애쓰던 현우가 안되겠다는 듯 운전석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의 흠뻑 젖은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발달한 가슴과 등허리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냈다. 얼마나 애를 썼는지 운동화는 이미 진흙 투성이었다.

“ 일단은 집으로 들어가는게 낫겠어요.”

 포기한 형원이 시동을 끄자, 현우가 먼저 앞장서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비바람 속에 차를 움직여 보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닌 형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쫄딱 젖은 옷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현우가 건네주는 수건을 받아들고 몸을 말리는 동안 현우는 얼른 방의 보일러를 올렸다. 여름날씨라 해도 이런 일에 익숙치 않을 형원은 한눈에 보아도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것이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 잠깐 쉬고 있어. 비가 좀 잦아들면 건너편 집에 가서 손을 빌려볼게.”

 그렇게 말하는 현우의 머리카락 끝에서도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지만, 별거 아니라는 듯 손등으로 이마를 아무렇게나 닦아낸다. 불편하겠지만 젖은 옷 보다는 나으니까- 라며 자신의 옷을 건네주고는 방문을 닫고 나갔다. 형원은 손에 들린 티셔츠와 바지를 잠시 내려보다가 무겁게 몸에 달라붙은 제 옷을 주섬주섬 벗기 시작했다. 뜨거운 볕에 잘 말린 뽀송한 반팔 셔츠에서는 세제냄세와 함께 이제는 익숙한 오메가의 향이 희미하게 베어났다. 저도 모르게 숨을 한번 들이킨 형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 한쪽 구석의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이게 무슨 쓸데없는 고생인지 제 처지에 잠시 현타가 왔지만, 슬슬 덮쳐오는 오한에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양쪽 무릎을 끌어안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 이게.. 무슨,”
“ 계속 추워하길래.”

 깨질 듯이 아픈 머리로 뻑뻑하게 말라버린 눈꺼풀을 겨우 뜨고 보니, 코앞에 너른 가슴팍이 보였다. 얇은 티셔츠 너머로 닿는 몸이 뜨끈했다. 체온을 나눠주려 최대한 닿는 면적을 넓게 하려던 것인지, 쓰러지듯 벽에 기대 누운 형원을 현우가 양팔 가득 끌어안고 있었다. 아무리 체향이 약한 열성이라고 해도 이렇게 빈틈없이 몸을 부대끼고 있으면 페로몬의 영향을 안받을 수가 없었다. 너무, 가까웠다.

“ 괜찮으니까 비켜요.”

 들이마시는 숨 깊숙히 훅 끼쳐오는 향에 반사적으로 현우의 단단한 가슴을 밀치며 몸을 일으켰다. 현우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나는, 계속 불러도 안깨어나길래 걱정이 되서..”

 당황으로 물든 얼굴이 우물쭈물 한다. 형원은 현우의 그 목소리마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아득한 느낌이었다. 추위로 떨리던 몸이 이제는 너무 뜨거웠다. 어질한 머리를 한손으로 짚으며 형원이 인상을 쓰자 현우가 다시 심각한 얼굴로 다가와 이리 저리 형원의 상태를 살폈다. 현우는 정말로 걱정이 되었다. 어쩌면 병약한 것이 수원과 형원네 집안 내력일지도 몰랐다. 열이 얼마나 있는지 보려고 형원의 볼에 자신의 손등을 갖다 댄 순간, 형원이 아플정도로 손목을 강하게 잡아챘다.

“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형.”

 낮게 깔린 목소리가 낯설어 현우가 잡힌 손목을 빼내려 팔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 희고 마른 손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꿈쩍도 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더 아프게 죄어 오고 있었다.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벗어나려는 현우의 모습에 형원은 또다시 기분나쁘게 심장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불안정한 맥박과 열기로 터질것 같은 머리, 이건 분명 러트의 전조 증상이었다. 형원도 모르는 새 지속적으로 오메가 페로몬에 노출이 되어 주기가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우성알파로의 첫 발현 이후로 러트는 적당히 약으로 조절하고 있었다. 애초에 형질인이 흔한 것도 아니었고 페로몬에 의한 짐승과 같은 교미는 형원의 취향도 아니었다. 충분히 안전하게 관리 할 수 있었던 러트 주기를, 이 무지각한 오메가 덕에 병원도 갈 수 없는 오지에서 맞게 된 것이었다.

“ 집에 전화라도 할테니까, 그냥 두세요. ”
“ 오는데 적어도 몇시간은 걸릴텐데 그동안 내가 뭐라도- ”
“ 혼자 놔두는게 도와주는 거예요. 제발 좀, 형.”

 형원의 날선 대꾸에 현우가 다가가던 몸을 멈칫 했다. 그러다가 풀려난 손목을 반대쪽 손으로 슬쩍 감싸쥐며 조심스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내가 싫은 건 충분히 이해돼.. 그래도 지금은 상태가 너무 안좋아 보이니까-”
“ 형 페로몬 때문에 발정기 온 거예요. 다리 벌리고 다 받을 수 있어요?”

 부러 노골적인 단어를 써 쏘아붙였더니 놀란 얼굴로 쳐다본다. 당황한 표정으로 잠시간 굳어 있던 현우가 겨우 의미를 알아채고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특이 형질인 줄은.. 몰랐어.”
“ 알았다 해도 별로 다르지 않았을것 같은데요.”
“ .. 미안. 내가 향 조절에 미숙해서.”

 조금 주눅이 든 것같은 얌전한 얼굴은 현우의 다부진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묘하게 순종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어, 형원은 답답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손끝을 만지작 대고 있는 정수리가 동그랬다.

“ 한번 자서 괜찮아지는 거면, 나한테 해도 돼.”

 마치 형을 위해 늘상 그래왔던 것 처럼, 원한다면 잠자리를 준비하겠다는 그 담담한 대꾸에 형원은 순간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형원이 말 없이 빤히 쳐다보자, 그걸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현우가 조용히 일어나 방문을 닫고 나갔다. 지끈거리는 머리로 흐려져가는 이성을 부여잡으려 애쓰는 와중에 얼마 안 있어 현우가 다시 돌아왔다. 뜨거운 물로 몸을 씻은 것인지 물기가 남은 얼굴이 약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가만히 다가와 제가 빌려 준 바지를 입고 있는 형원의 아랫도리에 손을 댄다. 잠시 눈치를 보는 듯 형원을 흘끗 쳐다보았지만, 아까부터 이미 얇은 반바지를 빳빳하게 쳐 올리고 있는 양감에 망설임 없이 옷을 끌어내렸다. 바로 와 닿는 입술은 말랑하고 따뜻했다. 혀로 귀두 끝을 굴리듯 적신 후 조금 더 깊이 받아들이기 위해 고개를 움직였지만 크기가 버거운지 자꾸 중간 쯤에서 걸렸다. 남자다운 얼굴선에 비해 작고 동그란 입술은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흘러내린 침으로 금세 번들해졌다.

“ 더 크게 벌려요.”

 형원이 허리를 펴고 몸을 완전히 일으키자 무릎을 꿇은채로 현우도 엉거주춤 따라 올라왔다. 뒷목을 꾹 누르는 마르고 큰 손이 단단하게 현우를 옭아매었다. 잠깐 입으로 숨을 쉬고 싶어 다급하게 형원의 허벅지를 쥐고 밀어냈지만 오히려 입 안으로 성기가 꾸역꾸역 더 깊이 밀려들어왔다.

“ 컥.. 크흡..흐..”

 현우가 괴로워하며 몸을 떨었지만 형원의 자제력은 이미 휘발되어버린 상태였다. 뜨겁고 좁은 점막 안으로 더더 깊이 성기를 쑤셔넣고 양껏 씨를 뿌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현우의 상체가 흔들릴 정도로 목구멍 깊숙히 빠르게 피스톤질을 하던 형원이 호흡곤란으로 현우의 의식이 거의 날아가기 직전에서야 울컥거리며 사정액을 쏟아냈다. 형원의 손아귀에서 겨우 풀려난 현우가 발작적으로 기침을 토해냈다. 붙들고 있던 형원의 단단한 허벅지에 쓰러지듯 뺨을 기대고 한참을 콜록대는 얼굴이 눈물과 여러 액체로 푹 젖어 있었다.

 힘이 쭉 빠져버린 몸은 형원이 잡아 끄는대로 딸려갔다.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현우의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운 형원이 그의 티셔츠를 벗겨냈다. 옷 위로도 모양을 덧그릴 수 있을것 같던 곧은 쇄골과 두툼한 가슴근육이 형원의 시선 아래 그대로 드러났다. 단단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손바닥에 닿는 가무잡잡한 피부결이 말랑하고 부드러웠다. 저를 앞에 세워두고 훑듯이 가슴을 주무르는 형원을 보면서도 현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금방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것 같았다. 흐리멍텅하게 총기가 사라진 눈으로 형원의 반듯한 눈썹이나 굴곡진 붉은 입술 따위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현우의 상태를 눈치 챈 형원이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깊게 향을 들이마셨다. 약하긴 했지만 곧 러트를 맞이하려는 알파의 날카로운 감각에는 차고 넘치는 자극이었다. 자연스레 형원의 귓가에 얼굴이 닿게 된 현우가 앓는 소리를 냈다. 전에는 한번도 인지하지 못했던 시원하고 쌉싸름한 향이 자꾸만 현우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코 끝에 살랑거리며 닿는 형원의 머리카락이 부드러웠다. 홀린듯이 손을 들어 그 머리를 조심스레 만져보는 현우의 행동에 형원이 현우의 가슴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며 혀를 내어 목덜미를 핥았다.

“ 형이 이런건 안 알려 줬어요?”

 형원이 아이처럼 짓궂게 웃었다. 항상 완벽하게 향을 감추는 형원이 처음으로 풀어낸 향에 노출된 현우는, 쏟아지는 알파 페로몬을 무방비하게 뒤집어쓰고 있었다. 형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살을 맞대고 욕심껏 그 향을 들이마시고 싶었다. 본능에 따라 자꾸만 얼굴을 자신의 목 언저리에 부비작대는 현우에 형원은 그의 목덜미를 더 강하게 씹어물고 싶은 욕구를 억눌렀다. 각인에 대한 경각심도 없어뵈는 오메가는 계속해서 약한 살갗을 잘근대는 형원에게 온전히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 아.”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 가슴을 난폭하게 콱 베어 무는 형원의 행동에 현우가 몸을 크게 들썩였다. 톡 튀어나온 돌기 주변의 부드러운 갈색의 피부위로 선명하게 잇자국이 새겨졌다. 아직 한참 모자랐지만 형원은 그것을 끝으로 아쉽게 입맛을 다시며 몸을 떨어뜨렸다.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이 무방비한 오메가를 꼼짝 못하게 엎어 놓고 눈물을 줄줄 흘릴 때 까지 엉망으로 안을 수 있을것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오싹한 흥분감이 몸을 훑고 지나갔지만, 현우의 체향을 양껏 들이마시고 한차례 사정한 것 만으로 일단 치솟던 열기는 일시적으로나마 진정이 된 상태였다. 본격적으로 러트가 시작되기 전에 어떻게든 서울로 돌아가면 되었다. 날이 밝자마자 떠나면 된다.

 형원이 가까스로 인내심을 발휘하여 옷을 추스리고 향을 갈무리했다.



 다시 돌아 온 서울에서의 생활은 바쁘게 흘러갔다. 가장 먼저 주치의에게 처방받은 약으로 러트 사이클을 해결하고, 형의 장례식 이후 처음으로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도 참석을 했다. 아직 대학생인데다가 형을 핑계삼아 어느정도 여유를 부리던 형원이었지만, 상황이 달라졌으니 주어진 집안의 의무는 받아들여야 했다. 다행히 소질이 있었던 것인지 처음 해보는 회사일도 하나씩 어렵지 않게 적응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바쁜 일상에 파묻혀 지내다보니 한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빨리도 지나갔다. 그사이 의식적으로 시골에서의 일은 가능한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현우도 절차대로 후원금을 받으면 운이 없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이제부터라도 자유롭게 하고싶은 일을 하면 되었다. 따지고 보면 형원 역시 그 과거와 관련된 사람이니 더는 안보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것이다.

 저도모르게 상념에 잠긴 사이 책상 위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잠시 고민하다가 받은 형원은, 집이 팔렸다는 상대방의 말에 전화를 잘못걸었다 대꾸하고는 끊으려 했다. 그러는 찰나 생각이 난 형의 별장과,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제것을 삼키려 애쓰던 현우의 마지막 모습이 자연스레 따라 떠올랐다.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 도망치듯 피해왔던 마지막이 못내 찜찜했다. 얼굴을 보고 사과를 하면 그를 떠올릴 때 마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이 초조함과 불안도 사라질까.

“ 알겠습니다, 곧 가죠.”

 문제의 집을 깔끔하게 정리하면 더이상 소모적인 감정에 얽매일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오메가의 향에 불필요하게 노출 될 상황도, 어정쩡한 죄책감에 시달릴 것도 없다. 이왕 이렇게 된거 형원은 빨리 마무리를 짓고 싶어 바로 차키를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 현우 형, 집에 있어요?”

 시골에서는 문을 잠그지 않는게 예삿일인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반쯤 열려 있는 대문을 살짝 밀어젖히며 마당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해가 막 넘어가기 직전이라, 이 시간이면 집에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묘한 적막만이 형원을 맞이했다. 잠시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지도 몰랐다. 이제는 익숙한 듯 툇마루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려던 찰나 형원의 발끝에 무언가가 채였다. 한쪽으로 가지런히 벗어둔 현우의 운동화였다.

“ 형, 안에 있어요?”

 마루 안쪽의 방문 앞에 다가가 노크를 하려는 순간 으응,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문고리를 잡으려 손을 뻗는데 먼저 문이 열리며 현우가 얼굴을 내밀었다. 형원이 그렇게 가까이 서 있을줄 모르고 하마타면 부딪칠 뻔한 몸을 뒤로 다시 물리며 현우가 당황한 표정을 했다.

“ 형원아.”

 그리고 천천히 깜빡거리는 그 둥근 눈과 평소처럼 느릿하게 어물거리는 말투로 처음 제 이름을 불러주는 현우를 마주했을 때 형원은 울고싶은 기분이 되었다. 마지막 인사와 함께 깔끔하게 관계를 매듭짓겠다고 했던 불과 몇시간 전의 다짐이 우스운 거짓말 같았다. 그의 따뜻한 눈동자에 제 모습만을 담게 하고 부드러운 입술은 영원히 제 이름만 부르게 하고 싶었다. 자신은 결국 수원과 지독하게 닮아 있었다.

 한뼘도 안되는 둘 사이의 거리는 형원이 큰 손으로 현우의 턱을 당겨 입술을 겹침으로써 빈틈없이 좁혀졌다. 젖은 마찰음이 몇번 울리고, 도톰한 입술을 가르며 혀를 밀어넣자 달아날 줄 알았던 현우가 적극적으로 뜨거운 살덩이를 더욱 깊게 얽혀왔다. 그러고보니 양팔 가득 들어오는 몸이 지나치게 뜨끈했다.

“ 하, 괜찮아요?”

 형원이 급하게 입술을 떼고 현우의 얼굴을 살폈다. 숨을 몰아쉬는 등이 어딘가 불편한것 처럼 둥글게 말려 있었다. 거친 호흡 사이로 훅 끼쳐오는 향이 달았다. 더위에 약한것 치고도 현우의 이마는 수상할 만큼 땀으로 흠뻑 젖어 짧은 머리카락이 어지러이 달라붙어 있었다. 거추장스럽게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넘겨 주는 행동에 현우의 몸이 눈에띄게 흠칫 떨렸다.

“ 몸이 뜨거워..”
“ 언제부터 그랬는데요.”
“ 그때 떠난 이후로, 흡, 자주.”
“ 병원도 안갔어요?!”

 형원이 황당한 듯 다그쳤지만 현우는 그저 작게 고개만 가로 저으며 자꾸 바닥에 주저 앉으려는 것처럼 몸을 웅크렸다. 형원의 손길이 얼굴에 닿은것 만으로 오메가 향은 전에없이 폭발적인 형태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원까지 이성이 아득해질 만한 양이었다.

“ 정신 좀 차려봐요. 현우 형, 히트 보낸 적 있어요?”
“ 아니, 나는 열성이라서..”

 성향도 강하지 않고,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평생 히트 사이클이라는게 없을 수도 있다고 했었다. 단순히 심한 감기몸살이라 넘기기에는 유난스러운 몸상태였지만 꾹 참는 것에는 익숙한 몸이라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형원이 왔음을 인지한 순간부터 겉잡을 수 없이 감각이 예민해지고 머릿속이 타들어가듯 열이 올랐다. 형원을 마주하게 되면 그를 덮치고 볼품없이 매달리게 될 것 같아 제발 그냥 돌아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는데, 갑자기 입술을 맞붙여오는 형원의 행동에 현우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알파향을 한번이라도 욕심껏 들이마시고 싶다는 본능에 사로잡혀 그 외의 모든 사고는 휘발되었다.

“ 아무래도 그때 알파 페로몬에 많이 노출되서 그런 것 같아요.”
“ 혼자 너 생각하면서 자위했어. 미안해.”
“ 잠깐 여기 봐바요, 형.”
“ 흑, 몇번이나 뒤를 쑤시면서..”

 불안정한 호흡 사이로 울음기 섞인 고백이 쏟아져 나왔다. 눈썹을 일그러뜨린 채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괴로운 듯 양손 깊숙히 묻는다. 보기좋게 모양이 잡힌 단단한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어 나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뭉개지는 발음으로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는 통통한 입술이 열에 들떠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입술을 씹어 물며 형원이 현우의 몸을 바닥으로 넘겨 눕혔다. 약하게 발버둥치는 몸을 뒤집어 한 손으로 뒷목을 내리 누르고 나머지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대니 미약하게 우는 소리를 냈다. 베이지색 반바지의 엉덩이 부분은 이미 동그랗게 젖어들어 있었다.

“응, 읏..!”

 몸을 움찔거리며 허리를 비트는 현우의 바지와 속옷을 한번에 끌어내리자 잔뜩 발기한 성기가 퉁겨져 나왔다. 배에 닿을 듯 빳빳하게 고개를 쳐 들고있는 것의 끝부분이 벌써 바지 속에서 몇번 싸지른 것 처럼 번들거렸다. 엉금엉금 기어 달아나려는 몸뚱이를 적당히 향을 풀어 제압하고 양쪽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 이렇게 될 때까지 참았으면 이제 억제제도 안들어요. 넣을게요.”

 현우에게는 무정하게 들렸겠지만 틀린말은 아니었다. 알파성기를 무리없이 받기 위해 흥건히 새어나오고 있는 애액이 벌어진 엉덩이 골을 타고 바닥으로 길게 늘어졌다. 현우는 가위에 눌린 것처럼 온몸을 무겁게 짓눌러오는 위압적인 향에 두려움과 동시에 흥분이 밀려들었다. 난생처음 뒤에서 뒤에서 액이 줄줄 새어나오는 생경한 감각과 그걸 형원에게 다 보여지고 있다는데서 오는 충격에, 그저 눈을 크게 뜬 채 바닥에 엎드려 숨만 색색 몰아쉬고 있었다. 다리를 오므리고 싶었지만 사지가 제것이 아닌 양 꼼짝도 할 수 가 없었다. 형원의 손이 닿아있는 피부가 불에 댄 듯이 뜨거웠다.

 근육이 보기좋게 올라붙은 엉덩이를 형원의 크고 마른 손이 터뜨릴 듯 움켜쥐어 벌렸다. 진홍색으로 달아오른 구멍의 주름을 엄지손가락으로 슬쩍 문지르다 쑥 밀어넣자 한번에 쉬이 삼킨다. 조르듯이 손가락을 우물대는 뜨겁고 눅눅한 내벽에 형원은 애가 달아 입안에 침이 고이는걸 느꼈다. 벨트를 풀러 한참 전 부터 단단하게 기립한 성기 끝을 구멍위로 문지르자 아래에 깔린 몸이 펄떡거리며 더 가까이 엉덩이를 문질러왔다.

“ 응, 응.. 흐으..”

 현우의 까맣고 반질한 눈동자는 흥분에 잠식되어 초첨을 잃은지 오래였다. 멍하게 풀어진 얼굴로 그저 저를 품어주는 알파에게 더 깊게 닿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만 남아 있었다. 그가 원하는대로 커다란 성기를 단번에 끝까지 처박아주니 비명같은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뜨끈하게 열이 오른 가무잡잡한 어깨를 씹어물며 형원은 가차없이 허리를 쳐 올렸다. 현우의 크고 탄탄한 몸이 위로 퍽퍽 밀릴 정도로 격렬한 몸짓이었다. 뱃속을 뚫을것처럼 뜨겁고 커다란 성기가 엉덩이를 아프게 벌리고 들어올 때 마다 현우는 몸을 떨며 물같은 사정액을 줄줄 쏟아냈다. 자신을 단단하게 옭아매는 형원의 늘씬한 팔과, 목덜미에 닿는 부드러운 입술 따위가 못견디게 좋았다. 철퍽거리는 소리가 아래에서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허리를 뒤트는 현우의 몸통을 빈틈없이 끌어안으며 형원이 귓가에 닿을듯 속삭였다.

“ 각인이라는 걸 하면, 금방 열이 내릴거예요, 형.”
“ 흑! 으.. 으읏! 조금만, 천천히..잇!”
“ 다시 이름 불러줘요.”
“ 형..원! 아, 형어나.”

 질질 새는 발음으로 애원하며 제 이름을 부르는 입술이 퍽 사랑스러웠다. 형원은 뜨겁게 그 입술을 가르고 숨을 불어넣듯이 혀를 얽혔다.

 처음엔 형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본능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늘 죽음과 불안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형에게 손현우는 거짓말같은 안식이었을 것이다. 그 따뜻하고 생명력 넘치는 몸을 품안 가득 끌어안고 있는 순간만큼은 끈질긴 불행에서 해방될 수 있었음을. 그리고 한참을 어린 제 친동생이 희귀한 우성알파 판정을 받고 발현열에 밤새도록 괴로워할 때, 손현우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자신의 새장속에 깊숙히 가두어 두고 안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형원은 현우를 찾아내었고, 형의 안식은 영원히 깨어졌다. 이 모습을 형이 보지 못하는 것이, 그의 짧고 불행한 인생에서 마지막이자 가장 큰 행운이었다.